무지개 사라진 자리
권영상
내일쯤 감자를 캐려고 안성에 내려왔다.
비어 있는 뒷집이 선뜻 눈에 들어왔다. 2년 전, 평택에 직장을 둔 젊은이가 새로 집을 지어왔었다. 마흔 줄의 나이였지만 미혼이었다. 주말이면 늘 모형비행기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갔다. 그럴 때에도 나를 보면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꼭 했다. 나 말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그는 외로워서였을까. 고양이와 살았다. 누가 왔나 싶게 고양이랑 두런두런 이야기 했고, 고양이는 젊은이가 출근하면 사람보다 더 외롭게 울었다.
그러던 그가 집을 팔고 가버렸다. 아직 들어올 사람이 없는지 빈집이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떠나고 난 그의 빈집을 보니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특별히 잘 해준 건 없지만 잘해 주려고 했다. 감자를 캐거나 호박을 따 건네면 얼굴이 붉어지도록 부끄러워했다.
어쨌거나 내일은 감자를 캐야 한다. 지난해 같으면 7월초에 캤을 텐데 많이 늦어졌다. 감자 캔 자리에 대파를 심으려면 더는 미룰 수 없다. 대파 모종판에 물을 주려고 물조리개를 찾아들고 나오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아, 무지개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오기 전에 비가 내린 모양이었다. 파란 무지개가 건너편 숲 위로 커다랗게 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색깔을 구분해낼 수 있을 만치 선명하다. 나는 빈 물조리개를 든 채 우두커니 서서 회색 구름 위로 뜬 무지개를 바라봤다. 얼마만인가.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본 이후로 대체 얼마 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그 동안 무지개를 잃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니 꿈도 잃어버린 채 밥벌이에 매여 살았다. 도회의 높은 건물들 사이로 걸어다니며 살아왔으니 설령 무지개가 떴다 해도 시야에 들어올 리 없었다.
어린 시절, 그 옛적에는 봄부터 무지개가 떴다.
누군가 무지개다! 하고 소리치면 나는 동무들과 자전거를 타고 무지개를 향해 달렸다. 작은 애들은 뛰어오고, 동네 개들마저 함께 방죽을 달렸다. 무지개를 잡으려고 달려간 게 아니라 그 커다란 무지개 아래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서 보고 싶은 거였다. 그 어떤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 안에 들어서고 싶은.
그렇게 달리다가 문득 무지개가 사라지면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사라진 것에 대한 허전함을 달래곤 했다. 그러니까 무지개라는 소리에 무지개를 향해 우리가 달려갔던 건 허전한 마음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무지개를 찍어두기 위해 나는 서둘러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들고 나왔다. 그 잠깐 사이, 산뜻하던 무지개가 사라질 듯 희미해졌다. 휴대폰 카메라로 그런대로 한 컷을 찍자, 무지개도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무지개가 사라진 빈 하늘을 바라보며 돌아섰다. 있던 것이, 그것도 아름답던 것이 사라져서 그럴까. 마음이 그 옛날의 어린 내 마음처럼 허전해진다.
살아오면서 있었던 자리에서 사라지고만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던 부모님, 형제, 친구, 아쉽게 떠나간 계절과 즐겨 부르던 노래, 영화, 책, 꿈, 우정과 사랑. 그 모든 것들이 떠나가느라 남긴 허전한 자국은 내 마음 그 어딘가에 얼룩처럼 남아있겠다. 그것들은 때로 눈물이 되고 상처가 되고 외로운 추억이 되면서.
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지만 단지 내가 살고 있는 집 가까이에서 함께, 그것도 단 2년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뒷집 젊은이가 떠난 빈자리는 그의 빈집처럼 허전하고 아프다.
<교차로> 2020년 7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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