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이 돌아왔다
권영상
비끝 하늘이 파랗다. 공기도 맑고 햇살도 눈부시다. 텃밭을 돌아 나오는데 보니 매실나무 아래쪽 가지들이 진딧물투성이다. 지난해에 낳아놓은 진딧물 알이 비 끝에 깨어난 모양이다. 약 치는 것보다 진딧물 낀 가지를 잘라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전지가위를 찾아들고 가지를 잘라나갔다. 나무 둥치에 올라앉은 청개구리가 나를 피해 자리를 옮겨 앉는다. 그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가만가만 가지를 자르다가 다시 보니 청개구리와 달리 노르스름하다. 몸은 통통하고, 별 볼품없는, 작고 좀 징그러운 녀석이다. 청개구리도 물론 아니고, 그냥 개구리도 아니다.
혹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검색했다. 맞다. 그 녀석! 그 녀석이었다.
재작년 여름, 이슥한 밤이었다. 뜰 마당 아래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자꾸 울었다. 멍! 멍! 멍! 강아지는 뜰아래 길을 따라 왔다 갔다 하며 울었다. 근데 가만 들으려니 강아지 우는 소리하고는 좀 달랐다. 문을 열고 외등을 켰다. 울음소리는 여전한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멍, 멍, 하던 소리가 이번에는 엄마! 엄마! 이렇게 들렸다. 어떻게 들으면 좀 어눌하고, 좀 바보스럽고 좀 모자라는 아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캄캄한 밤, 혼자 빈집에서 밤을 맞는 기분이 야릇했다. 으스스하거나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방마다 불을 켜고, 외등도 켰다. 그리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울음소리가 마당귀 수로쯤에서 났다. 그러니까 그 불길한 울음이 뜰마당으로 들어온 것이다. 점점 나를 압박해 오는 그 울음소리를 향해 빗자루를 던졌다. 그래도 울었다. 급한 대로 신발짝을 던졌다. 그래도 그 ‘엄마! 엄마!’ 하는 그 야릇한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온몸에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경희 아빠! 이리 좀 와 보세요!”
염치불구 옆집 경희 아빠를 불러냈다. 그이가 손전등을 비추고 나오며 그거 맹꽁이에요. 맹꽁이. 맹꽁이 소리에 그렇게 놀라시네요, 하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맹꽁이를 알 리 없었다. 맹꽁이라 꼭 맹한 강아지처럼 운다며 손전등 불빛을 따라 마당을 돌아나갔다.
방에 들어와 인터넷을 열었다. 거기에 나타난 그 녀석이 바로 오늘 아침에 보는 이 맹꽁이다. 서울 경기 경남 지방에 분포해 산다니 강릉이 고향인 내가 전혀 모를 수 밖에.
“맹꽁이가 돌아왔어!”
나는 모처럼 내려와 있는 아내를 불렀다.
맹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택지개발로 맹꽁이 서식지가 사라지고 화학비료 사용으로 인한 하천이나 물웅덩이 오염이 이들을 멸종 위기로 내몬 것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게 양서류인 이들 맹꽁이란다. 그러고 보면 맹꽁이가 돌아왔다는 건 그냥 단순한 맹꽁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쪽 마을이 건강하다는 뜻이고, 이쪽 마을 사람들의 생태의식이 건전하다는 뜻이다.
“근데 맹꽁이 울음이 왜 당신 귀에 ‘엄마! 엄마!’로 들렸지?”
아내는 내가 가리키는 매실나무 위 맹꽁이를 보며 물었다.
맹꽁이 울음소릴 들으면 듣는 사람도 맹꽁이가 된다나봐! 그러니 내가 맹꽁이가 됐던 거지뭐, 하고 웃어보였다. 어쨌거나 이태만에 돌아온 맹꽁이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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