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아내의 꿈

권영상 2018. 5. 23. 16:24

아내의 꿈

권영상




말 나온 김에 아내랑 집을 보러 나섰다. 나이에 비해 좁다면 좁은 집에서 오랜 날을 살았다. 내리 20년 가까이 살았으니 세간은 점점 늘어나고 빈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적당히 살고 새 집을 찾아가는 재주가 우리에겐 없었다.




“내 방이 있는 집을 갖고 싶어.”

아내는 아내의 방을 원했다. 아내의 말을 성큼 따라주지 못하는 내가 아내는 한없이 답답했을 테다. 당신 믿고 살다간 이 좁은 데서 늙고 말거라고 역정을 내었다. 그러나 그렇게 내게 면박을 주다가도 때가 되면 아내의 타박은 잦아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사를 결행한다는 건 우리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출근하랴, 밤늦도록 수업준비 하랴, 집안일 하랴. 각자 자기 일하랴. 시간에 쫓기며 사는 우리가 집을 보러 다니는 일도 그랬다. 집을 보러다니는 일이란 게 하루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조용하다가도 때가 되면 아내는 또 좁은 집을 탓했다. 아내가 탓하는 그 때란 작품 출품 청탁서를 받는 때다. 아내에겐 그림을 그릴 작업실이나 방이 따로 없다. 나는 처음부터 글을 씁네, 하고 내 방을 챙겨왔고, 딸아이는 딸아이의 방을 당연히 받았다. 안방이나 거실에서 그림 작업을 할 수 없는 아내는 아는 이의 화실에 끼어들거나 다들 잠 든 새벽에 일을 벌여왔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나의 무능의 소치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방이 네 개는 돼야해. 좀 넓고.”

집을 보러 나서기 전, 아내가 차에 오르며 내게 다짐 받듯이 말했다.

차를 몰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지지구와 그 주변을 돌았다. 마음에 드는 집을 얻는 일이란 역시 어려웠다. 주변 경관이 괜찮으면 방이 세 개고, 우리가 원하던 대로 방이 네 개면 전망이 막혔거나, 층이 낮아서 햇빛이 안 들거나, 방 구조가 마음에 안 들었다.



우리는 우리를 안내하는 이에게 우리가 원하는 평수 이상의 것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어쩌면 거기에 우리가 원하는 집이 있을 것 같았다. 역시였다. 전망도 좋고 방의 구조며 넓이까지 마음에 쏙 드는 집은 평수가 큰 곳에 있었다. 살던 집을 두고 교외에 나와서까지 몸에 꼭 맞는 평수에 살아야하나! 아내나 나나 마음이 조금씩 대범해졌다.  빈집 순례를 다 한 뒤 그 집을 한 번 더 찾아갔다. 한없이 넓은 거실과 네 개의 큰 방들. 다시 보아도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내일이라도 당장 들어가 살 수 있는 미분양 아파트라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잔뜩 부푼 마음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 그쪽에 나가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계약했으면 한다고. 내 이야기를 듣던 그가 큰 집들이 분양이 안 되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라며 이것저것 내게 충고해줬다. 듣고보니 친구의 말이 다 옳았다. 이번에는 아내의 휴대폰이 울었다. 아내가 받았다. 다급하게 통화를 마친 아내가 허겁지겁 나갈 준비를 했다.

“요양원이야. 엄마가 더 아픈가 봐. 자꾸 이러시네.”

요양원은 집에서 전철로 한 시간 반 거리인 수색역 근처다.



“이러시는데 그 먼 수지로 어떻게 이사를 가겠어.”

아내는 벌써 집에서 수색까지가 아닌 수지에서 수색까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림 안 그리며 살면 되지 뭐.’ 했다. 20년 넘도록 그림 작업을 해왔는데 그만 두겠다는 거야 하는 말이겠지만 아내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떻든 시간을 내어 집을 보러 또 한 번 나서야겠다.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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