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달력을 넘기며
권영상
책상 옆에 2018년 새해 탁상달력을 놓는다. 갓낳은 365개의 따뜻한 달걀 한 바구니를 받아놓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살아오면서 이처럼 확실하게 받았던 크고 든든한 선물이 또 있었을까. 그가 누구든 똑 같은 분량의 선물을 똑 같은 시각에 똑 같이 받는다. 공평하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새해 달력을 받았대서 묵은 달력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지난해의 중요한 일정을 옮겨 적는 버릇이 생겼다. 씨앗 파종 날짜며 베란다에서 크는 호금조 산란 날짜, 가족의 생일, 인근 산에 철쭉이 피는 시기, 선물을 받은 날과 토란택배를 보낸 날짜, 친구와 만났던 날짜, 가족 여행, 문학과 관련한 행사, 그리고 건강 검진일 등은 묵은 달력과 함께 그냥 버리기엔 너무도 아까운 정보다.
살아오면서 얻은 게 있다. 사람 사는 일이란 게 대체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남한산성 철쭉은 해마다 5월 15일경이면 핀다. 그리고 그때면 어김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그 산 장경사를 찾는다.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도 늘 5월 20일경. 봄을 기다려온 우리 가족의 인내심이 그쯤에서 분출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일도 즐겁지만 보내는 일도 즐겁다. 텃밭에 심은 토란을 캐어 구우들에게 보내는 날은 서리 오기 전인 10월 27일. 그때가 가까워지면 지난해 그 얼굴들이 떠올라 마음이 바빠진다.
지난 일들 중에 이런 메모도 있다. ‘정종 한 병’.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인 1월 27일의 메모다. 나는 지금도 그 옛날의 정종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해도 취직을 못한 채 망연히 한 해를 넘기던 저녁 무렵이다. 누군가 들판을 건너 이쪽으로 오는 사내가 있었다. 뒷마을 대추나무집 대구형이 설을 쇠러 오는 길이었다. 취직을 하여 타지에 나가 사는 그의 손에 정종 한 병이 들려있었다. 밥벌이를 못하던 나는 그 정종 한 병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때 이후로 섣달그믐이 되면 나는 정종 한 병을 사들고 집을 찾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그믐밤이면 어김없이 아버지에게 정종 한 잔을 따라드렸다. 아버지는 그 정종을 좋아하셨다. 그게 일자리를 구한 내 취직의 증표이며 자식 노릇을 하려는 ‘술 한 잔’임을 아버지가 모르실 리 없었다.
“해마다 섣달그믐에 마시는 술이지만 새 술이라 맛있구나.”
아버지는 딱 한잔을 좋아하셨다. 그 한 잔을 드시면 그 말씀을 하셨다. 어쩌면 해마다 마셔온 이 정종 맛을 기억하시는 게 아니라 인생의 나이를 또박또박 기억하신다는 말씀 같았다. 지나간 해는 지나간 해다. 우리 앞에 이제 ‘새 술’ 같이 맛있는 새해가 왔다. 해마다 피는 남한산성의 철쭉은 그 옛날의 철쭉이 아니다. 올해의 기후와 토양과 시절에 맞는 새로운 철쭉이다. 모든 것은 지난 날의 그것이 아니다. 반복될 뿐 늘 새로운 것이다.
지나간 달을 넘기고/ 새 달을 받는다. // 이 아침/ 나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서른 개의/ 깨끗한 날을 받는다.// 달걀 한 바구니처럼/ 굵고 소중한 선물. // 어미닭이 달걀을 품듯/ 서른 개의 날들이/ 서른 개의 꿈으로 깨어나게 될 일을/ 곰곰 생각한다.
동시집 <아, 너였구나!>에 실린 내 동시 ‘달력을 넘기며’이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삼백서른 날의 선물을 우리는 이미 받았다. 모두 지난해에 받았던 그 선물을 닮았지만 새로운 꿈을 이루어낼 새로운 선물이다. 부디 새롭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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