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사람살이의 순조로운 리듬

권영상 2018. 1. 8. 13:22

사람살이의 순조로운 리듬

권영상





세자씨를 찾은 건 지난해 초가을이었다. 찾아가려 해 찾아간 게 아니고 길을 잘못 들어 세자씨가 사는 동해안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날 오후, 아내는 절친인 세자씨에게 전화를 했다. 세자씨가 대뜸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겠단다. 그 말에 나는 사양했다. 아무리 잘 아는 사이라 해도 여행점퍼 차림으로 세자씨 부부와 함께 사시는 생면부지의 시부모님을 뵙는 건 도리가 아닌 듯 했다. 끝내 세자씨 내외를 밖에서 만났다.



“우린 여태 단 둘이 여행해 본 적이 없어.”

통성명이 끝나고 음식을 들던 중에 세자씨가 옆에 앉은 남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를 부러워하는 말 같았다. 이야기인즉 세자씨 부부는 여행을 해도 꼭 동네 분들과 함께 했고, 그 일을 맡아 진행하는 이 역시 시골 고등학교 교장인 세자씨 남편이었다.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마을 분들 뒷바라지를 손수 하신다 했다. 그거야 어찌 생각하면 세자씨 남편의 능력이거나 취향일 테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나로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런 여행에 늘 동반하는 세자씨의 무던함이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방식의 여행만 해 왔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했지만 감정 섞인 불평은 아니었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감히 생각도 못할 여행 스타일이었다.



세자씨가 부러워하는 우리의 여행이란 게 뭐 별거냐 하면 별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 두 몸만 생각하면 되고, 우리 둘만 좋다면 길을 가다가도 여행코스를 바꾸면 그만이다. 뭐든 우리 위주이다 보니 서로의 취향을 침해하는 것도 침해당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개성 없거나 줏대 없는 일쯤으로 치부한다. 그런 우리로서는 세자씨 내외의 단체여행 아닌 단체여행은 충격이었다. 그날 우리는 해안가 초가을 밤 풍경을 즐기다가 그들 내외와 헤어졌다.

그러고 석 달이 지난 어젯밤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 갑자기 세자씨한테 의논할 일이 있다며 아내가 전화를 했다.



“벌써 자고 있니? 목소리가 잠자던 목소리 같아서..... 그렇다고?”

나는 언뜻 벽시계를 봤다. 9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아내는 간단히 몇 마디하고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이 시간이면 시부모님이 주무시기 때문에 다들 잔다네.”

아내가 혀를 내둘렀다. 아내가 주고받은 전화에 끼어들어 가타부타 하지 않아온 나로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자씨의 수면이, 아니 그녀의 삶의 방식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나의 일에 매달리다가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잔다. 아내는 그보다 더 늦은 시각에 잔다. 간섭받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런 우리와 달리 세자씨 내외는 자신들이 아닌 부모님 수면에 맞춘다.



“우리도 뭔가 좀 바꾸어볼까?”

다음 날 아내가 그 말을 한다. 충격을 받은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았다.

일찍 출근해 직장 일을 보고, 부모님을 따라 이른 저녁을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주말엔 친구들과 농기계를 몰며 땀을 흘린다. 사람살이의 순한 리듬이 그런 게 아닐까. 어쩌면 그런 삶 때문에 ‘단 둘만’의 여행보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즐기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사는 세자씨 부부의 무던한 마음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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