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악기 훈의 소리를 살려내다

권영상 2018. 1. 14. 19:13

악기 훈의 소리를 살려내다

권영상




잡동사니를 담아두는 상자 속에 악기가 하나가 있다. 악기를 여기에 담아 둔지 10여 년은 됨직하다. 모양과 크기가 통통한 홍시를 닮았다. 홍시를 닮았다 하지만 빛깔은 좀은 흉한 검정색이다. 속은 비었고, 앞쪽에 작은 구멍 세 개, 뒤쪽에 두 개가 나 있다.



이 좀은 흉하게 생긴 악기라는 것과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식으로 등을 돌리고 살아왔다. 한 번도 눈을 맞추거나 안부를 걱정해본 적이 없다. 훈도 그랬다. 워낙에 붙임성 없고 퉁명한 녀석이다 보니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이렇게 한 집안에 살면서도 남남보다 더한 남남같이 서로를 외면하며 살아왔다.

그를 손에 넣은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인사동 어느 골목에서 서먹한 관계의 친구와 술을 마시고 그 술값을 내가 냈는데, 그게 너무 미안하다며 친구가 보따리 안에 넣어온 이 물건을 내게 주었다. 친구는 그때 이 물건이 훈이라는 악기라고 했다. 악기라 하니 악기인 줄 알았지 한 뭉치 떼어놓은 흙덩이를 닮았다.



상자에서 나사못을 찾다가 우연히 훈을 발견했다. 뽀얗게 앉은 먼지를 털어 제 자리에 앉혀 놓으려다 한번 불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일었다. 운지법도 모르는 악기를 들고 취구부에 입술을 대어 불었다. 불어질 리 없다. 조금 세게 불어도 보고 입술의 위치를 요리조리 바꾸어가며 불어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연주할 줄 모르는 나의 무지 탓이겠지만 이미 소리를 망각한 악기 같았다. 나는 소리내기를 포기하고 본디 있던 잡동사니 상자에 툭 던져 넣었다.



훈은 본디 기왓장을 굽는 흙이다. 천 년 만 년 이 땅의 흙으로 오랜 시간을 침묵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흙이 누군가의 손에 잡혀 훈으로 빚어졌다. 훈으로 빚어졌다고 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고온의 불 속에 들어가 뜨거운 불을 이겨야 한다. 그 과정을 견뎌내어야 비로소 훈이 된다.

훈이 되었다고 악기가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훈은 악기로 살아난다. 그 일은 훈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를 원하는 누군가와의 만남이 필요하다. 어느 일방의 욕심이나 성급함으로는 안 된다.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교류할 절실한 만남이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서로를 받아들이는 진지한 시간의 축적 또한 필요하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훈과 만났던 이러저러한 과거를 싹 버렸다. 그리고는 일어나 상자 속 훈을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연인의 손을 감싸듯 감싸 쥐고 나의 체온이 훈에게 고루 퍼져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 얼마 뒤 취구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훈의 정지된 심장을 살려내듯 나직하고 부드럽고 고른 날숨을 불어넣었다. 뜻밖에도 훈이 호오호오 울어준다.

제 몸의 오랜 침묵을 깨고 내 숨결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록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소리지만 악기로 태어나려는 노력만은 분명했다. 훈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훈의 체온이 따스하다. 서로의 체온을 공유할 때 소리는 뜻밖에도 흘러나와 주었다.



나는 밤이 깊어가도록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천천히 길들였다. 그의 소리는 투박하되 깊은 저음이다. 천 년 만 년 침묵한 대지의 음성이 이럴까. 먼데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 애절함이 묻어있다. 오늘밤은 서로 등을 돌리고 살던 훈을 만났다. 그러면서 서로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 훈과의 만남이 너무 늦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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