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번째 생신, 100번째 원서
권영상
어제는 고모 생신이었다. 100번째.
고종 사촌이 며칠 전 내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 백수라며. 어머니가 백수잔치를 한사코 반대하셨다고. 그렇다고 그 말씀대로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며 꼭 나오라 했다. 그게 자식의 당연한 도리지, 그 말을 내가 했다.
모임 장소인 신당역 근처 음식점에 모두 모였다. 고종사촌과 그의 식구들, 그리고 주위분들. 그 자리에서 백수하신 고모님을 뵙고, 축하 인사를 드리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 백수하신 고모님은 연세와 달리 정정하셨다. 앉으신 모습이 꼿꼿하셨다. 답례를 하시는 음성 또한 또렷하셨다. 총명하심도 여전하셔서 웬만한 전화번호는 모두 기억하신다 했다. 물론 식사도 잘 하셨고, 잠도 잘 주무신단다.
100번째 생신.
예전 텔레비전에서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괜히 뿌듯했다. 왠지 인간승리 같은, 인류 의학의 위대한 업적 같은, 100년이라는 한계를 돌파한 것 같은 대견함이 나를 우쭐하게 했다. 무엇보다 그런 기적이 내게도 닥쳐올지 모른다는 수명 연장의 기대감도 있었다. ‘뭐, 100살이래?’ 남의 일임에도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해서 생신 잔치도 끝났다. 고모님을 한 번 더 뵙고, 몇몇이 전철역까지 걸었다. 서로 인사를 하느라 알게 된 70줄이거나 80줄에 든 분들이었다. 100 수를 하신 고모님을 뵈어 그런지 모두 말이 없었다. 100 수가 우리에게 먼 시절일 때는 그게 축복이었는데 현실에 와 닿고 보니 다른 느낌이었다. 피하고 싶은, 이 닥쳐온 현실이, 자신에게도 닥쳐올지 모를 이 현실이 좀은 우울하게 느껴졌다. 나만 그럴까.
내 주변만 해도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놓고 사는 이들이 여럿이다. 그런 말을 꺼내기 어렵지 꺼내놓으면 집집마다 사정이 다 비슷하다. 처음엔 자식들이 모셨고, 그러느라 형제간의 불화가 커져 더는 어찌할 수 없어 보내드리는 곳이 그곳이다. 무엇보다 그분들 대다수가 가족도 못 알아보는 치매 증상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백수 인생. ‘갈 준비가 안 됐다고 일러라’ 하지만 웃으며 노래부를 일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메일을 여니 노수옥이라는 시인의 ‘100번째 내가 반송되었다’라는 시 한 편이 들어와 있다.
매매합니다
나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다
흙수저의 성분은 삭제하고 쓸 만한 물건이라며 그럴듯한 각주를 달았지만 편견과 냉기뿐인 거래는 일방적이다 일찌감치 싹을 잘라버리는 甲, 매몰찬 눈길에 소름이 돋는다 치열한 이력을 낱낱이 구매품목에 전시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거절의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초라한 스펙에는 덕지덕지 겨울의 흔적이 붙어있다 아무도 봄을 믿지 않는다. 뿌리만 남은 구근은 또 혹독한 음지를 건넜는데 싹 틔울 곳이 없다 푸른 촉을 내밀어 나를 고백한 입술이 말라간다 내일은 또 어디에 나를 접목할까 봄의 꼬리를 붙잡고 101번째 이력을 전송한다
여전히 넘치는 자유를 탕진하며, 증오하며.
시 속 젊은이는 100번의 입사원서를 넣어보지만 그 어떤 회사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아 세상이 밉다. ‘나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아도 팔려나가지 않는 나.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에 나오는 첫구절 ‘사람들은 오늘도 죽지 않았다’는 말처럼 강력하면서도 원색적이다. 젊은이들에게 있어 실업은 이제 딱하지만 일상이 되었다. 출생 못지 않게 죽음에 관한 일도 이제 심각해졌다.
100이란 완성의 기호이다. 100번째의 생신도, 100번째의 입사원서도 완결판이어야 하는데, 왜 이쯤에서 축하받는 일이 못되고 다시 101번째의 원서를 보내야하는 걸까. 오래 사는 일이 정말 축복인가,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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