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새해엔 일자리가 좀 넉넉해졌으면

권영상 2017. 12. 24. 08:57

새해엔 일자리가 좀 넉넉해졌으면

권영상




일을 마치고 그 음식점에 들어선 건 오후 2시쯤이다. 한바탕 점심 소동을 끝낸 음식점은 고적했고, 조명은 반쯤 꺼져 있었다. 인기척에 저쪽 식탁 사이에서 누가 몸을 일으켰다.

“좀 쉬려는 참이었는데.....”

여자주인이었다. 쉬는 시간을 방해해 미안하다며 돌아서는 나를 그분이 잡았다. 들어오셨으면 잡숫고 가셔야지, 한다. 나도 이쪽 음식점 골목에서 하필 이 음식점을 찾아왔는데 그냥 돌아서기도 그랬다. 하지만 손님들 점심을 대느라 골몰했을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시키고 앉아 있는 사이, 두 사람이 출입문 밖에서 이쪽을 기웃거린다. 다행이다 싶었다. 나 하나를 위해 일어난 주인에게 덜 미안해서다. 그들이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앞서 들어온 남자와 달리 여자는 한 손으로 열고 들어온 문이 닫히지 못하도록 잡고 있다.

“얼른 문을 닫지 않구!”

여주인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제야 쭈빗쭈빗 들어선 20대 남자가 음식점 주인을 보고 ‘아르바이트?’ 한다. 이들이 문을 닫지 않은 채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남자가 등 뒤의 여자를 가리키며 ‘여학생! 여학생!’했다. 그러나 주인의 귀는 나와 달랐다. ‘유학생이라고?’ 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나라?’ 주인이 다시 물었다. ‘베트남.’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여자가 꾸벅 인사했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주인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말에 그도 유학생인듯한 남자가 안심하라는 듯 연거푸 ‘여학생! 여학생!’했다.

“올해는 안 써!”

주인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힘없이 그들이 돌아섰다.

“그럼, 혹시 내년엔 쓰시나요?”

내가 불쑥 그 말에 끼어들었다. 주인여자가 흘끔 나를 봤다. ‘저들에게 조금치의 희망이라도 쥐여주시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이 동네서 제일 좋은 음식점인데.’ 나는 내가 끼어든 걸 후회하면서 듣기좋게 말했다. 이 추운 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그들이 안쓰러웠다. 외국 학생이든 외국 근로자든, 우리 젊은이든 일자리를 얻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이 나가자, 출입문은 우리가 원하던 대로 닫혔다. 훅 불어오던 한기도 그쯤에서 멈추었고, 우리가 원하던 대로 식당 안은 다시 아늑해졌다.

주인이 음식을 날라다 놓으며 입을 열었다. 학생 알바는 우리가 바쁠 때는 즈이들 방학이라 안 와요.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만 가르치다가 취업 현장에 진입하려 애쓰는 젊은이들을 막상 눈으로 보자니 마음이 아팠다.



늦은 점심을 먹고 음식점을 나왔다. 길거리가 한산하다. 아까 본 그들이 종이커피를 들고 전신주 앞에 서 있다. 다가가 일자리를 구했냐고 물었다. 고개를 젓는다. 힘 내렴! 그러고는 돌아섰다. 이 근방에 이들을 받아줄만한 아는 친구 하나 없다. 이들도 일자리를 구해 놓아야 새해를 맞는 게 마음놓일 텐데.... 그들을 길거리에 두고 돌아서는게 안타깝다. 우리의 청년일자리 형편이 그들과 다르지 않아 더욱 그렇다. 새해엔 넉넉한 일자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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