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삼포에서 그 섬을 만나고 싶다

권영상 2017. 7. 29. 15:43

삼포에서 그 섬을 만나고 싶다

권영상






장맛비가 한 차례 퍼붓고 달아난다. 기다렸다는 듯 짜아, 창밖 매미들이 목청을 높인다. 숨었던 더위가 후끈 몰려나온다. 불어터질 듯 오후가 덥다. 이렇게 반복되는 날씨가 벌써 오래다. 달력을 보니 세상이 지금 삼복중에 놓여 있다.

“피서 가고 싶다.”

아내가 처음으로 피서라는 말을 꺼냈다.

더위도 더위지만 지금이 휴가철이다. 누구라도 지금쯤이면 바다가 그리워질 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달려살던 집에서 좀 떠나보고 싶은, 좀 홀가분해지고 싶은 그런 때에 와 있다. 



“작년에 갔던 곳 어때?”

내 몸이 지난해의 그 바다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해에 갔던 바다라면 고성 삼포해수욕장이다. 그때 아내와 나는 모험삼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길을 찾아 떠났다. 양평 서종인터체인지에서 우리는 46번 국도를 탔다. 차는 가평, 양구, 인제, 백담휴게소를 지나 매바위 인공폭포에서 고성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굽이굽이 진부령을 넘어 아침 9시경에 출발한 차는 오후 1시쯤 고성에 닿았고, 거기서 다시 속초 방향으로 남하하여 드디어 우리가 목표하던 삼포에 도착한 때가 거의 오후 2시.



처음 찾아간 삼포해수욕장은 내 눈에 쏙 들었다. 수심이 얕았다. 무엇보다 동해안답지 않게 듬성듬성 섬을 가지고 있는, 낯선 풍경이 흥미로웠다.

섬들은 해안과 일정한 거리로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거기까지가 그 옛날 육지였던 흔적 같았다. 그 섬 중 꽤나 잘 생긴 섬 하나가 해안 가까이 걸어와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섬 이름을 물었지만 아무도 아는 이는 없었다. 혹 그 섬을 죽도라 하는 이도 있었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죽도는 그 섬이 아니었다. 나는 이름 없는 그 섬을 바라보며 삼포 사람들과 그 섬의 거리감, 아니 서로간의 무심함을 생각했다.



섬은 북극으로 헤엄쳐 가던 도중에 잠시 멈추어 선 듯 한 혹등고래를 닮았다. 형상은 그러했지만 그 섬이 풍기는 내면은 약간 그로테스크했다. 좀 꺼림칙하다고나 할까. 가까이 다가오거나 다가가선 안 될 것 같은 악령의 주술, 그런 게 느껴졌다. 혹시라도 근접했다간 주술에 감염될 것 같은 거리감이 분명코 있었다. 여기 사람들이 이토록 가까이 와 있는그 섬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까닭을 알 것 같았다. 한번 빨려들면 다시는 돌아 나올 수 없는, 아니 한번 그 섬에 마음을 주면 그 섬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괴이스러움이 있었다. 그 탓인지 그 섬엔 들어가는 배도 없고, 가려는 이도 없었다. 가까이 있으되 서로 등을 돌리고 사는 묘하거나 기이한 풍경.



나는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다가도 쫓아나와 아내와 함께 파라솔 그늘에 누워 그 섬을 바라봤다. 바다에 와 있건만 마치 오두막에 홀로 앉아 두꺼운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운 한낮에 그 일은 싫지 않았다. 읽어갈수록 내 몸은 긴장했고, 내 상상력은 깊어졌고, 나는 야릇한 풍광에 외로이 빠져들었다.

나른하고 권태로운 이 여름, 불현 삼포해수욕장의 그 이름 없는 섬이 떠오른다. 혹등고래처럼 이미 북극으로 떠나버렸는지, 아직도 그 마을사람들과 척을 지고 외면하듯 살고 있는 건지……. 생각해볼수록 그 섬만큼 나를 긴장시킨 섬도 없다. 여름이 가기 전에 그 섬을 한번 더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