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귀에 심은 뜰보리수 한 그루
권영상
요란한 천둥소리에 마루에 나왔다. 소낙비가 퍼붓는다. 장엄한 폭우 수준이다. 비 구경을 하다 말고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열린 창으로 비가 들이쳐 방바닥이 흥건하다. 빗물을 훔치며 생각해 보니 뒤란에 널어놓은 파씨가 있다. 신문지에 널어놓은 파씨가 빗물에 범벅이다. 소낙비가 사람의 혼줄을 뺀다.
우산을 쓰고 엊그제 이식 해놓은 파밭에 나갔다. 물길을 찾지 못한 빗물이 파 고랑에 펀하게 고였다. 괭이를 찾아들고 물길을 내준다. 막힌 물이 쿨썩 터져난다.
그 무렵, 내 귀에 건너편 산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괭이를 짚고 허리를 펴 보니 뚝 소낙비 그쳤다. 하늘이 멀개진다. 꾀꼬리가 비 그친 신호를 보낸 셈이다. 기다렸다는 듯 물까치들이 마당귀 뜰보리수나무로 날아온다. 여름내내 뜰보리수 단맛에 길들었으니 잠시도 단맛을 잊을 수 없겠다. 요즘은 꾀꼬리 부부가 주 단골이다. 건넛산에서 마치 노란 케이블카를 타고 쭉 내려오듯 일직선으로 날아와 실컷 보리수를 따먹고는 돌아갈 때도 케이블카를 타듯 쭈욱 일직선으로 날아가서는 산중턱 참나무숲에 든다. 동네 사는 박새, 참새, 까치들도 노상 와 산다. 하늘색 줄무늬 어치며 수다쟁이 직박구리도 어디서 소문을 듣는지 심심찮게 찾아온다.
마당귀에 무슨 나무를 심을까, 고민하던 때가 5년 전이다. 유실수를 심어 과일 따는 재미를 보라는 게 주위분들의 충고였다. 근데 나 먹자고 심은 과일나무 과일을 나 좋자고 똑똑 따는 상상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함께 사는 동네 새들을 외면할 수 없어 선택한 나무가 뜰보리수다. 지금 생각해도 그 선택이 옳았다. 올해는 뜰보리수 꽃이 좋았다. 벌들이 회양목 꽃을 좋아하듯 보리수꽃도 좋아한다. 그 탓에 보리수 열매가 풍년이다. 가끔은 새들이 그 빨간 열매를 나 먹어보라고 마루 난간에 한두 알 놓아두고 간다. 홍보석 같다.
열매 맛이 좋다. 먹어보면 새들이 반할 만큼 달다. 가뭄이 길어 더구나 달다. 해가 져 어수룩해질 때까지도 새들은 그맛을 떨치지 못해 풀방구리 드나들 듯 드나들며 제 집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보리수나무는 즐겁다. 아침 저녁으로 새들을 위해 한 솥씩 빨간 홍보석 밥을 짓는다. 제 집 찾아오는 손님을 배불리 먹여보내자는 게 보리수나무다. 넉넉히 먹여주면 새들은 밥값으로 노래를 부른다. 열매가 무르익어 발효된 탓일까. 새들 노래에 취기가 돈다. 정해진 발성법을 버리고 무형식의 노래를 술 취한듯 부른다. 억양이나 리듬마저 거칠고, 요란하다.
한 그릇씩 밥을 해 먹이는 뜰보리수나무는 힘들겠지만 사는 맛이 날 테다. 바라보는 나도 좋다. 올해는 처음부터 보리수 열매에 절대 손대지 말고 오로지 자연에 헌사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 덕분에 우리집 마당귀가 이 동네에서 가장 붐비게 됐다. 나 혼자 따먹기에 딱 맞는 과일을 심었더라면 이런 풍족함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건너편 산 위로 한 뭉치 흐릿한 구름이 또 몰려온다. 장마 중의 소낙비라 하여도 좋다. 가뭄에 목말라한 아픔이 온몸 구석구석에 상처처럼 남아있는 모양이다. 또 비온대도 좋기만 하다. 파밭에 나간다. 손구락을 밭고랑에 찔러본다. 물씬 들어간다. 비가 어지간히 온 모양이다. 밭 가장자리 들깨가 확 잎을 편다. 진딧물에 시달리던 고추밭 고춧잎이 푸르다. 토마토가 눈에 보이도록 붉게 익어가고, 쑥갓 꽃빛이 더욱 노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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