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귀향곡

권영상 2017. 6. 17. 11:20

귀향곡

권영상




휴대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7시다.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보니 미국에 건너가 사는 고향 친구다.

“웬 잠을 이렇게 늦게까지 자고 있어!”

그가 부스스한 내 목소리를 듣고 대뜸 책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나 나나 평생 농사꾼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나고 컸고, 그 아버지 성화로 늦잠을 자 보았을 리 없다. 그랬으니 7시가 되도록 자는 내 모양이 괴변스러운 건 당연할 테다.



“국내에 들어가 살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그가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하긴 남의 아침잠을 깨울 만큼 하루종일 이 문제를 생각했겠다. 아니 어쩌면 여러 날을 고민 고민하다가 전화를 했을 테다.

“이 나이에 물설고 낯 설은 곳에서 외롭게 늙어 가느니 이젠 고향에 돌아가 옛 친구들과 섞여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동네 어른들 두루 찾아뵙고..... 형님 남겨놓은 집도 그대로 비어 있고 하니 말이야.”

그가 귀향가를 불러댔다.

그에겐 손위로 형님 한 분, 누님 두 분이 계신다. 올봄 형님을 잃었다. 홀로 사신 형님이라 후사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자연 형님 남겨놓은 집이며 농토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더구나 그는 붙임성이 좋아 친구들도 많다. 평소에도 그들과 함께 참외농사를 짓고, 양계를 하거나 마늘농사를 짓고 싶다는 타령을 해왔다.



그가 우리 땅을 떠난 지는 오래됐다. 군 복무를 마치면서 결혼과 함께 하와이로 건너갔다. 내가 알기로 거기서 슈퍼마켓을 하며 자식들을 낳아 키웠다. 그 무렵 나는 또 내가 사는 고에 빠져 그의 소식에 관심을 둘 형편이 못 됐다. 가끔 어찌어찌 고향 친구들로부터 알래스카에 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거기서 이누이족들과 무슨 사업을 하는지.

그렇게 30여 년이 지난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오늘처럼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까맣게 잊고 살던 그였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와 살고 있었고, 그동안 자신의 행적을 이야기를 했다. 나는 또 그 동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데 전화 소리에 깨어난 아내가 물었다.



“무슨 전환데 울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나는 울고 있었다. 아니 울었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그도 나도 오래 묻어두었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울었다. 그는 늑막염으로 학업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했고, 나는 어머니의 긴 우환으로 얼룩진 나의 젊은 날을 이야기 했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산다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지?”

그가 다시 물었고, 나는 제수씨도 함께 귀국 하냐고 물었다. 그 말에 그는 혼자 갈 거네 했다. 혼자 들어와 형님 사시던 집에서 형님처럼 살다가 가겠다는 말 같았다. 고국을 멀리 떠나가 사는 남자에겐 평생을 함께 사는 아내보다 고향과 고향친구가 더 그리운지 모르겠다. 자식들도 훌륭히 키워냈고, 아직도 자신의 일이 있어 부지런히 살고 있는 그다.



“거기 벌써 한밤중인가?”

내가 소리쳐 물었다.

“한밤중은? 이제 퇴근했다네.”

“근데 뭔 꿈을 그렇게 꾸고 있어!”

내 말에 그가 웃었지만 그의 웃음 끝은 허탈했다.

오늘은 하루종일 그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인 그곳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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