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주신 꽃 한 송이
권영상
연일 폭염이다. 한 차례 폭우가 지나고 나면 어딘가 숨어있던 폭염이 몰려나온다. 북은 준 파골 흙은 폭우가 다 무너뜨렸다. 다시 괭이를 들고 무너진 흙을 일으켜 세우거나 집 주변의 무성히 자란 풀을 벤다.
사람에게 있어 여름은 힘든 계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식물들은 다르다. 지난해에 심은 꽃복숭아나무는 폭염이 오히려 흥겹다. 배롱나무도 지금 꽃이 절정이다. 우리집 앞을 지나는 이들이라면 굳이 나를 불러내어 ‘거 볼수록 멋있네요’ 한다.
긴 가뭄 덕분인지 올해는 꽃이 좋다. 칸나도 꽃이 좋다. 꽃빛도 진하다. 해바라기며 백일홍도 그렇다. 꽃빛이 진하다는 건 꽃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폭우를 견뎌내지 못한 꽃이 있다. 메리골드다. 메리골드는 울타리를 돌아가며 꽃담삼아 심었다. 파밭이며 고구마 밭 가장자리에도 빙 돌아가며 꽃담으로 심었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아 마당에 따로 메리골드 꽃밭을 만들었다. 가지가 옆으로 버는 프렌치 메리골드가 아니고, 위로 커 오르는 아프리칸 메리골드라 자연히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아프리칸 메리골드는 해마다 장맛비에 쓰러진다. 토마토 지주를 뽑아 메리골드 꽃담을 따라가며 박는다. 그러고는 쓰러진 꽃을 안아 일으켜 세운다. 메리골드는 이 때가 좋다. 품안에 싱그러운 허브 꽃내가 가득찬다. 꽃숲에 얼굴을 묻고 한참 있으면 세상의 번잡한 생각들이 모두 사라진다.
꽃을 다 일으켜 세운 뒤 배롱나무 그늘에 앉아 요란히 피는 메리골드를 바라본다. 적갈색 꽃잎에 금빛 테두리가 있는 어찌보면 단순하고 또 어찌보면 어머니처럼 고운 꽃이다. 꽃을 들썩여 놓아 그런지 마당에 메리골드 향이 가득하다.
이 꽃이 여기 오기 전에 살던 곳은 고향집 울담 밑이다. 어머니가 연로하시자 큰조카는 직장을 그만 두고 내 어머니인 할머니 곁에 내려와 살았다. 조카는 울담장 밑에 이 메리골드를 쪽 심었었다. 가끔 볕이 그리우면 어머니는 담장 밑에 나와 동무삼아 꽃을 쓰다듬으며 사셨다. 그때 어머니 곁에 피던 메리골드는 애잔했다. 젊은 메리골드는 점점 키가 컸고, 인생을 많이 사신 어머니 키는 갈수록 낮아지셨다. 꽃 곁에 앉은 어머니는 꽃숲에 묻히거나 보이거나 했다.
내가 고향에 들러 잠깐 머물다가던 그때다. 그때에도 장맛비는 종일 내렸다. 하루 더 있다가 가라는 어머니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도 힘없이 담장 앞까지 걸어나와 나를 배웅하셨다.
“심심하거든 꽃냄새 맡으며 가거라.”
어머니는 비 맞는 메리골드 한 송이를 꺾어 내게 주셨다.
그 얼마 뒤 어머니는 영영 가셨는데 그때를 잊을 수 없어 꽃씨를 얻어왔다. 그걸 첫해에 심고 그 이듬해에 심고, 또 그 이듬해에 심고 그리고 내리 3년을 심고도 그 꽃에 물리지 않는 것은 어머니가 주신 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 가끔 심심할 때가 있다. 그냥 심심할 때도 있지만 외로울 만큼 심심할 때도 있고, 목숨이 오고 가는 그 영원한 시간 때문에 심심해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때는 뜰에 나가 메리골드 숲에 얼굴을 묻고 꽃냄새를 맡는다. 그 꽃향기 속에 어머니가 조용히 와 계신다. 이윽고 내 마음이 잔잔해진다. 아마 이때를 위해 어머니는 내게 이 꽃 한송이를 주셨던 모양이다.
집에 들르는 이들은 뭔 꽃을 이 야단스럽게 심었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하지만 그건 꽃이 아니고 내게는 어머니다. 인생이 목마를 때에 꽃으로 만나보는 어머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름마다 쓰러져도 좋은 아프리칸 메리골드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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