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마음
권영상
베란다에 있는 십자매 조롱 곁으로 아내가 나를 이끌고 갔다. 십자매가 알을 낳았다는 거다. 어미새가 잠시 비운 둥지 속에 정말이지 알이 있었다. 보석같이 예쁜 알이 자그마치 열 개. 산란한다는 말을 며칠 전부터 들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모이를 먹던 어미새가 놀란 듯이 날아들어왔다. 날개죽지를 쭉 펴 그 열 개나 되는 알을 그러안듯이 품었다. 그 사이 둥지 바깥의 수컷은 어쩌나 하고 우리의 동정을 살폈다. 한 번 더 고 예쁜 알을 보고 싶었지만 어미새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왜 이 추운 삼동에 알을 낳았을까.”
나는 영하권으로 자꾸 떨어지는 바깥 날씨가 걱정이었다.
“새라고 생각이 없겠어. 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일 테지.”
아내가 두터운 보자기로 십자매 조롱을 덮어주었다.
그날부터 해가 지면 십자매 조롱을 현관에 들여놓았다. 베란다보다는 그래도 훈훈한 현관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아침이 오면 햇빛 드는 10시쯤에 베란다에 다시 내놓았다. 컴컴한 현관보다 차가운 햇볕이어도 베란다 햇볕이 나을성 싶다. 비록 이 일이 작은 미물에 관한 것이지만 우리의 삶과 무관치 않는 법.
그 일이 있고난 뒤다.
혼자 집에 남아 시집 원고를 정리하고 있을 때다. 책상 옆 조금 열어둔 뒷베란다 문틈으로 바스락, 소리가 넘어왔다. 작고 가벼운 소리지만 조용한 내 귀를 울렸다. 마치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던져넣었을 때 펴지느라 바스락대는 소리, 그런 소리였다. 창밖을 내다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쌓아둔 물건들이 제 자리를 잡느라 내는 소리겠거니 하고 말았다.
점심에 과일을 꺼내려 나갔다가 우연히 그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양파였다. 종이상자 속에서 양파가 파란 싹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싹이 나온 양파를 꺼내어 들었다. 새 순 네 개가 몰라보게 컸다. 이들이 양파 사이를 비집고 나오느라 마른 양파껍질 소리를 낸 거였다. 뒷베란다는 춥다. 추운데도 저 혼자 부지런히 새 순을 밀어올렸다.
병 하나를 찾아 물을 채우고, 양파를 얹었다. 예전, 이쯤이면 일부러 양파 새순을 틔워보던 기억이 있었다. 양파 얹은 병을 창가에 놓았다. 일 하다가 쉴 참이면 양파 순을 들여다 본다. 초록빛이 영락없는 봄이다. 이 추운 삼동에 양파는 제 몸에 깃든 봄을 이끌어올리느라 바스락댔다. 놀랍고도 대견한 일이다.
십자매 조롱 안의 풍경은 늘 같다. 한 녀석은 잔뜩 웅크려 알을 품고, 또 한 녀석은 둥지 밖에 나와 둥지를 지키고 있다. 아파트 마당 나무 그늘엔 눈이 그대로 쌓여있지만 집안은 봄을 준비하는 양파와 십자매들로 하루가 바쁘다.
알을 품은 지 일 주일쯤 됐으니 이제 한 열흘쯤 지나면 열 개나 되는 십자매 알이 부화할 것이다. 모두 다 부화할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새끼새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벅차다. 멀지않아 어미새들은 새끼를 돌보느라 또 분주해지겠다.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지만 이 즈음은 다르다. 얼른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도 우리지만 어린 미물들에게는 더욱 그 마음이 절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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