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입춘대길을 쓰며

권영상 2017. 2. 5. 14:48

입춘대길을 쓰며

권영상




입춘 아침입니다. 대문에 춘련을 써 붙이기 위해 여느 날보다 일찍 일어났지요. 종이를 마침맞게 잘라놓고, 지난해에 쓰고 올려둔 책장 위의 벼루와 먹을 내렸지요. 종지에 물을 조금 떠놓고 앉아 벼루 뚜껑을 열었습니다. 근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벼루 뚜껑이 꼼짝을 안 합니다. 딱 달라붙었네요. 손바닥 턱으로 힘을 주어봐도, 탕탕 세게 쳐봐도 여전합니다.

지난해 입춘에 한번 쓰고 말았으니 먹물에 달라붙은 모양입니다. 할 수 없이 욕조에 벼루를 넣고 더운 물로도 적셔 보고, 찬물로도 끼얹어 봅니다. 그래도 여전합니다.



“그러다 깨 먹겠네. 오늘 못 쓰면 내일 쓰지.”

아내가 바장대는 내게 기어코 한 마디 합니다.

아내 말대로 나는 벼루를 욕조에 두고 방에 들어왔네요. 벼루를 깰까봐 아내가 안달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지금 저 벼루는 아내가 처녀시절 내게 준 선물입니다. 그러고 보니 40년쯤 되는 나이를 가지고 있네요.



아내와 사귀기 시작한지 한 5년쯤 될 때입니다. 아내는 결혼을 하자는 내 말에 통 대답을 않았지요.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하는데 나만 이러다 결혼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지요. 자꾸 재촉하는 대신 어느 날, 금반지 하나를 책 속에 끼워 우편으로 보냈지요. 그때 아내는 강원도 깊은 산속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읍내에서 시오 리 험한 길을 걸어가면 강이 나왔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하는 오지 아닌 오지에 아내의 학교가 있었지요.

이른 봄이면 산수유 꽃이 자옥하게 피는 조그마한 산마을학교엔 선생님이 세 분, 아이들이 쉰 명쯤 되었지요. 아내는 그 학교에서 풍금과 기타로 노래지도를 했고, 밤이면 동네 아이들과 별 공부를 하며 오지 생활을 견뎠지요.



금반지를 보내고 한 달이 지났을 때입니다. 아내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나도 잘 아는 아내의 친구가 결혼을 하는 곳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거기에서 아내를 만났지요. 예식이 끝난 뒤 아내가 가져온 가방을 내게 건넸습니다. 그 안에서 큼직한 돌벼루가 나왔습니다. 학교에 문방사우를 파는 이가 왔는데 그분한테 샀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아내는 그 무거운 돌벼루를 들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예식이 있는 먼 원주까지 왔던 거지요.



어떻든지 그때의 벼루는 내게 있어 희망이었지요. 긴 기다림 뒤에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는 예감이었고, 봄이었던 셈이지요. 당장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어느 때가 되면 그렇게 되리라는 봄 같은 예감 말입니다. 그 후, 2년이 지난 뒤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결혼을 했지요. 오랫동안 글을 써오며 동료들의 신간을 받을 때면 이 벼루에 먹을 갈아 고맙다는 답장을 해주었고, 입춘이면 춘련을 써 대문이 붙여왔지요.



나는 다시 욕조에 둔 벼루를 보러 갔습니다. 다행히 뚜껑이 떨꺽 열립니다. 방으로 벼루를 옮겨와 먹을 갈고 붓을 들어 ‘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썼습니다. 대문에 춘련을 붙이고 물러나 그 글귀를 헤아려 봅니다. 머지않아 다가올 봄과 우리가 소망하던 것들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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