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우가 내린다는 밤
권영상
오늘 밤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이 말, 괜히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이 땅의 일도 아닌, 아득히 먼 우주에서 일어나는 별들의 기척이 그리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일들이 너무 번잡해 그런 걸까요. 하늘의 일에 마음 쓸 여유가 없는 내게 유성우라는 말은 신선했지요.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 시간당 120여개의 유성이 쏟아진다는 이 말은 나를 흥분케 하고도 남았지요.
저녁을 먹고 몇 번이나 마당에 나갔지요. 별들이 초롱초롱합니다. 호밀밭 건너 컴컴한 숲 너머에서 붉은 별 하나가 나를 향해 옵니다.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국제선 비행기의 항로를 알리는 불빛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 불빛이 오늘밤 우주의 소식을 전하러 오는 별 같아 나는 그 붉은 별을 골똘히 바라봤지요. 별은 내 머리 위를 지나 서쪽 하늘로 사라집니다.
그때에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도 유성우 소식을 읽은 모양입니다. 밤골이라면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거라며 하늘과 조금 더 가까운 다락방 난간에 나가 보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11시를 앞두고 옷을 챙겼습니다. 이런 날엔 가족을 데리고 전망 좋은 산에 올라 텐트를 치고 별을 본다던 젊은 후배의 말이 떠올랐지요. 나는 텐트 대신 점퍼 속에 조끼를 껴입었지요. 목도리를 하고, 마스크를 했지요. 방을 나서려다 들어와 장갑을 끼고 작은 담요를 들고 다락방 난간에 나갔습니다. 밤 기운이 싸아, 합니다. 나는 난간에 걸터앉아 담요를 쓰고 별하늘을 더듬어봅니다.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사분의자리는 북두칠성의 손잡이별에서 지평선이 가까운 쪽 근방이라 했지요. 거기가 별똥별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복사점입니다. 그 점을 보아두고 들판을 지키는 목동처럼 밤하늘을 여기저기 살폈습니다. 11시가 넘고 20분이 지나도 유성우는 없습니다. 맨눈으로도 볼 수 있댔는데 안 보입니다. 담요를 벗고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걸터앉았습니다. 유성우 대신 내가 아는 별을 찾기로 했습니다. 오리온, 작은곰,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 마차부.... 그 별들을 찾아가는 일이란 별과 함께 살았던 내 유년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과 같았습니다.
나는 또 언제 별을 보았던가요. 도시에서 대부분을 사는 동안 나는 별을 볼 겨를이 없었네요. 별을 보려했단들 내가 사는 도시의 하늘엔 별이 사라진지 오래됐습니다.
별일 없다해도 여기 좀 눌러 있을까 합니다. 이 나이에 다락방 난간에 웅크리고 앉아 먼 별들의 기척을 들으려는 내가 기특했습니다. 아니 내 안에 그 옛날의 별을 좋아하던 소년이 아직 살고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별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는 세월을 사는 동안에도 소년은 내 안에서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점점 자정이 가까워집니다. 이 이슥한 밤, 별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느 깊은 산에서, 또는 불빛이 드문 마을 언덕에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별들을 함께 보고 있겠지요. 텐트 속에서 따스한 국물을 마시며 전설 같은 별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을 테지요. 아기별이 태어나고, 그 별이 점점 자라 어른별이 되고, 또 늙어서 종내에는 사라지는 별이야기를. 아이들은 그 신비한 별의 일생과 자신의 일생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기도 할 테지요.
밤은 점점 춥습니다. 나는 우주 속에 사분의자리 유성우를 두고 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며 불쑥 아, 인류는 먼 우주와 이런 방식으로 서로 외면하지 않고 이야기하며 사는 거구나, 그 생각을 했습니다. 더운 물을 한 컵 마시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렇게 오래 별을 바라보다 잠이 들면 틀림없이 먼 별의 꿈을 꿀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유성우를 보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보냈지요.
‘다들 못 봤대’
그랬더니 위로 같은 담장이 금방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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