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생물들의 힘
권영상
어쩌자고 마당귀에 민들레꽃이 폈다. 복숭아나무며 모란 잎이 누렇다. 콩밭의 콩도 하루가 다르게 말라간다. 열흘 뒤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다. 그런 때에 민들레가 눈을 쏠 만큼 샛노란 꽃을 피웠다. 계절을 거스르는 민들레의 반격인가. 필시 지금은 민들레가 꽃 피울 때가 아니다. 요즘 아침 기온이 영상 10도, 이제는 성장을 멈추어갈 때다.
민들레꽃이라면 봄에 피는 게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론 그렇다. 지금 꽃을 피우는 민들레라면 그건 토종인 우리 민들레가 아니고 귀화한 서양민들레다. 나중에 꽃씨를 보아야 알겠지만 붉은씨민들레일 수도 있다. 어떻든 귀화종은 힘이 좋다. 도시의 아파트 마당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민들레다. 큰길가 보도블럭 틈에서도 잘 살고, 자동차 바퀴에 밟히면서도 꽃을 피운다.
토종민들레가 봄 한철, 한번만 꽃을 피운다면 이들 귀화종은 연중 내내 핀다. 그러니 연중 내내 꽃가루받이를 하고 씨앗을 만들어 날린다. 벌 나비가 사라진 추운 늦가을에도 피어 번식한다. 곤충 없이 바람으로 충분히 가루받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 꽃가루받이다. 제 고향에서도 이처럼 강한 번식력을 가졌을까, 그게 궁금하다.
이토록 억척스레 번식해 나가는 식물 중에 서양등골나물이 있다. 남부순환로를 끼고 있는 우면산엔 지금 등골나물꽃이 한창이다. 몇 년 전이다. 누군가 산비탈에 드문드문 핀 이 풀을 뽑아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걸 봤다. 그땐 몰랐는데 그게 귀화식물 서양등골나물이었다. 지금 등골나물은 내가 오르내리는 우면산 산비탈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소나무숲 그늘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나무들은 대개 영토를 독점하는 버릇이 있어 다른 식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테라핀을 내뿜는다. 근데 그 소나무 그늘까지 밀고 들어와 버젓이 꽃을 피운다. 이들은 토종식물과 달리 뿌리로도 번식한다. 거기다가 일반 식물들이 기피하는 나뭇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귀화식물답다. 낯선 남의 땅에 들어와 살고보니 음지 양지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러니 생존 능력이 월등하고 그 탓에 세력 확장 속도도 빠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귀화 식물은 300 여종쯤 된다고 한다. 잘 아는 것으로 망초가 있다. 자운영이 있고, 토끼풀, 달맞이꽃, 코스모스, 돼지풀이 있다.
어제다. 모 문학지의 문학축제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문학축제 중엔 북 콘서트도 있었는데, 거기 참여한 한 소설가의 말에 의하면 베스나 황소개구리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처럼 미시시피강도 미국으로 귀화한 우리나라 가물치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물치가 미시시피강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주범이라는 거다. 이동을 못하게 물막이를 해놓아도 허사란다. 비 내리는 날이면 이 가물치가 넓은 자동차 도로를 건널 정도로 이동 능력이 탁월하다는 거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식물이나 물고기만이 아니다. 내 고향 내가 잘 아는 친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3학년만에 그만 두고 그 어린 나이로 고향을 떠났다. 그는 이른바 을지로 ‘센방’가게에 심부름하는 아이로 들어갔다가 그 가게 주인이 되었고,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까. 나는 가끔 그를 생각한다. 귀화자들이 치열하게 생존해 나가는 동안 나는 안일하게 살았던 건 아닌지 다시 나를 돌아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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