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벌 2

점심에는 감자를 먹다

점심에는 감자를 먹다 권영상 비가 뜸한 사이로 감자 한 이랑을 캤다. 그중에 몇 알을 골라 점심엔 감자를 먹기로 했다. 감자를 씻으러 수돗가에 나가는 사이, 그새를 못 참고 비 온다. 굵은 비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안에 들어가 우산을 쓰고 나왔다. 서쪽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검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수돗가 머위 밭에 여태 눈에 들어오지 않던 봉숭아꽃이 비 맞으며 핀다. 지난해 피는 걸 그냥 두었더니 익은 꽃씨가 화살처럼 튕겨져 나가 여기저기 올라왔다. 머위가 성장을 멈추는 사이 봉숭아가 훤칠하게 컸고, 꽃도 가득 피웠다. 분홍이다. 추억이 많은 꽃이라 그런지 볼수록 참하다. 그리고 볼수록 정이 간다. 턱과 어깨 사이에 우산을 끼고 앉아 감자를 씻는다. 금방 캔 햇감자라 손만 대어도 껍질이 벗겨..

빗속에 호박꽃 피다

빗속에 호박꽃 피다 권영상 비 오는 아침,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호박꽃이 폈다. 호박밭 옆에 토마토 8포기를 심고 지주를 세워 주었는데, 호박순은 그 지주위의 햇빛이 탐나는지 짬만 나면 흘낏거렸다. “에비다! 거긴 네가 오를 자리가 아니야.” 그렇게 타이르며 끌어내리지만 언제 보면 또 넝큼 올라가 있다. 오늘은 아예 그 노란 호박꽃을 피워 들고 있다. 호박꽃은 비 오는 것도 모르고 꽃을 피우고, 무심한 하늘은 호박꽃 피는 것도 모르고 궂은비를 내려 보낸다. 둘 다 나무랄 수 없다. 호박은 먼 가을 누렁호박을 생각하면 우중이어도 꽃을 피워야 하고, 하늘은 또 호박꽃 피는 걸 뻔히 보면서도 우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테니 모르는 척 비를 뿌리고, 호박은 또 모르는 척 꽃을 피우겠다. 토마토 지주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