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 3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권영상 지갑을 잃어버렸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끝낸 뒤에야 알았다. 오후 2시쯤 가을 나들이 겸 차를 몰아 30분 거리에 있는 고찰에 갔었다. 지난해에도 갔었지만 그 절의 불타는 듯한 단풍과 잘 단장해 놓은 가을꽃 풍치가 그리웠다. 무엇보다 그 댁 부처님과 주렁주렁 달려 있을 감나무 감들이 눈에 선했다. 노란 은행나무 길 끝의 일주문을 들어서고, 천왕문을 들어서고, 가벼이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을 뵙고, 절마당 벤치에 앉아 이울어가는 가을 소풍을 즐겼다. 그때 가을꽃 곁에 앉아 꽃들과 놀았는데 그 사이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지갑이 빠져 나간 모양이었다. “절에다 지갑을 떨어뜨리고 온 것 같아.” 나는 결국 아내에게 그 말을 했다. “걱정 말어. 절에서 잃어버렸으니 부처님이 잘 돌보..

삼 년 고개

삼 년 고개 권영상 “우리 봄쑥 캐러 가요!” 아내가 그 말을 꺼냈다. 이때가 올 줄 나는 알았다. 그러니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나는 봄쑥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들판으로 나갈 옷을 든든히 껴입었다. 모자에, 마스크에, 목도리에, 장갑을 끼고 독립 운동 길에 나서는 사람처럼 길을 나섰다. 시골 봄쑥은 위험하다. 농약 때문이다. 농약 세례를 받지 않은 곳이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쑥보다는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으며 봄 구경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맞닿뜨린 곳이 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비탈이다. 아랫쪽은 피복을 씌운 양파밭이고, 20미터쯤 위쪽은 산으로 빙 돌아 올라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그 산비탈을 향해 다가갔다. 먼데서 보기에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쑥이 있다면 캐어도 좋을 믿을 만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