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문 4

아침 미닫이문 여는 소리

아침 미닫이문 여는 소리 권영상 오전 여섯 시 반쯤, 다르르, 울리는 미닫이문 소리에 긴 잠에서 눈을 뜬다. 겨울이라 그 무렵의 방안은 아직 어둑신하다. 새벽이라면 아직 새벽이고 아침이라면 이른 아침인 겨울날이다. 나는 방안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예의 그 시각이다. 여섯 시 반경. 미닫이문 여는 소리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아파트 옆집에서 나는 소리이다. 이때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댁의 누군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다. 밤사이 방 안 공기를 내보내고, 서늘한 새 공기를 받아들이려는 모양이다. 다르르, 창호문 바퀴가 레일을 따라 굴러가는 소리에 방안도 울리고 내 마음도 울린다. 방금 눈을 떴으니 잡념 하나 있을 리 없는 텅 빈 내 몸이 고요히 울린다. 그 소리는 바람처럼 가벼우면서도 ..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권영상 오랜만에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려면 남한산성 길을 타야 한다. 남한산성에서 하남시로 가는 동문을 빠져나오면 주차장 겸 휴게소가 나오고 그쯤에서 우회전을 하면 그곳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 끝엔 내 마음이 가고 싶어하는 조그마한 음식점이 있다. 나는 가끔 나에게 친구처럼 잘 대해 주고 싶을 때면 차를 몰아 남한산성 길에 들어서곤 했다. 집에서 차로 간다면 40여분 거리.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여도 생각난다고 대뜸 가지는 곳이 아니다. 아무라 가깝다 해도 한번 나가려면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 쉽게 나서지 못한다. 내일 가자고 하면 내일 문득 다른 일이 나서고, 주말에 가자고 하면 그런 날엔 필시 바깥 일이 생긴다. 밥 한 끼 먹으러 혼자 떠나는 일에도 얽히고설킨 관계..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며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며 권영상 날이 갈수록 기온이 떨어진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다락방에 올라가 지난봄에 떼어놓은 뽁뽁이를 찾아 내려왔다. 창문 여러 곳에 붙인 거니까 떼어낼 때 섞이지 않도록 ‘안방 창문’, ‘거실 창문 왼쪽’, ‘거실 창문 오른쪽’ 하는 식으로 쪽지를 써서 끼워 놓았다. 그걸 붙이는 일은 쉽고 간단하다. 유리문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붙이면 끝이다. 맨 처음 재단할 때가 어렵지, 그 후 나는 몇 년 동안 제 짝을 찾아 붙이기만 했다. 다 붙인 뒤 거실바닥에 앉는다. 그거 붙였는데도 집안이 한결 아늑한 느낌이다. 고향에서도 초겨울쯤이면 창호문을 바른다. 마당이 좀 한가할 때를 골라 아버지는 방마다 창호문을 떼신다. 한 해 동안, 비를 가리고 햇볕을 받고 바람을 막아낸 창호문의 창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