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 4

빛바랜 사진 액자

빛바랜 사진 액자 권영상 너무 성급한가? 왠지 봄 느낌이다. 순간 청계산 매봉이 떠올랐다. 나는 집을 나섰다. 양재역 근처에서 안양행 버스를 타고 인덕원에서 내렸다. 거기서 다시 청계사로 가는 택시를 탔다. 청계사에서 원터골로 가는 코스를 몇 번 산행해 본 경험이 있다. 청계사 주차장에서 내려 매봉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 올랐다. 이미 산도 봄 느낌이다. 생강나무 꽃눈이 노랗다. 길옆에 쌓인 가랑잎을 들추니 봄이 파랗게 숨어있다. 오랜만에 왔지만 산은 그대로다. 그때 그 바위를 타고 오르던, 척박한 바위 사이로 뿌리내리며 살던 그 다복솔 숲을 지나 매봉에 올랐다. 멀리 뿌연 하늘을 바라보려니 문득 고향이 아득하다. 아직 정초라 그런가. 고향이 떠오르고, 이제는 계시지 않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나는 매봉에서..

꽃씨를 보내는 사람

꽃씨를 보내는 사람 권영상 그분이 꽃씨 편지를 보내왔다. 하얀 편지 봉투를 여니, 그 안에 관공서에서 쓰는 질기고 얇은 노란 봉투가 또 나오고, 그 안에 눈에 익는 접시꽃 꽃 씨앗 십여 개가 들어 있다. 6.7년 전, 그때 그분으로부터 직접 받아본 그 꽃씨다. 그때 나는 그 접시꽃 씨를 안성 마당가에 심어놓고 여름 한철 그 꽃의 소박한 매력에 젖은 적이 있다. 첫해는 꽃이 피지 않고 그 이듬해부터 꽃이 핀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꽃씨 봉투를 기울여 손바닥에 꽃씨를 받는다. 흔하다면 흔하고 수수하다면 수수한 꽃씨다. 무엇보다 이걸 주변 사람에게 보낼 줄 아시는 그분 마음이 고맙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이걸 이렇게 보내는 일이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러려면 어느 날 꽃씨를 받고, 햇볕에 말리고, 문방..

내게도 반려 작물이 있다

내게도 반려 작물이 있다 권영상 “반려 식물 샀어.” 바깥일을 보고 돌아오는 아내의 손에 화분 두 개가 들려있다. 동네 가게에서 샀다는데 하나는 여우꼬리선인장이고, 하나는 콩난이라 했다. 나는 단번에 아내가 내려놓은 이 반려 식물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갔다. 예쁘기도 하거니와 이름조차 마음에 쏙 들었다. 여우꼬리니 콩난이니 하며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이 태어나 살던 곳을 즐겁게 상상하게 된다. 콩난은 잎도 줄기도 없다. 끈으로 구슬을 꿰어놓은 듯 작고 앙증맞은 식물이다. 여우꼬리선인장은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 가시가 여우 꼬리털처럼 황금빛으로 변한단다. 아내는 그걸 햇빛 가득한 앞 베란다 빨래건조기 위에 올려놓았다. 반려 동물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반려 식물이란 말은 처음이다. 웬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