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며 사는 기쁨
권영상
신호음과 함께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설 잘 쇠시고 올해도 행운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열어보니 주말농장이다.
농사철은 물론 명절 때면 주말농장에서 문자를 보내온다. 농장 주인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자그마한 키의, 절대로 눈속임을 할 분이 아닌 아주 선한 인상의 50대 남자다. 농장 운영을 전혀 할 것 같지 않은 호리호리한 분이다. 이 넓은 농장을 어떻게 관리하나, 그걸 우리가 걱정해야할 정도로 약해 보인다. 그런데 그분은 또 보기와 달리 강단이 있다.
농장 넓은 안마당엔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 좋은 그늘에 앉아 국수를 말아먹을 때면 그분이 지나가다 인사를 한다.
“나오셨어요?”
“예. 볕이 좋네요.”
나는 집에서 싸온 바나나와 비스킷을 내놓으며 부른다.
쌍까풀 눈을 한 농장주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온다. 내가 국수를 먹는 사이 농사짓는 법이며 거름 둔 곳을 알려준다. 그분은 착해서 내가 국수를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못 뜬다.
나는 늘 밭에다 남들처럼 상추 등속의 갖은 채소를 다 심는다.
이런 저런 것들을 고루고루 심어보고 싶어 심는다. 채소는 물론 옥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는다.
지난 해 농장에서 구해 심은 상추 모종은 너무도 특별했다. 양상추 비슷한 푸른 상추다. 그 상추만 서른 포기를 심었는데 커오르는 속도가 나를 놀라게 했다.
“대체 이걸 어쩐대!”
주말농장에 갈 때마다 나는 상추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걸 집에 다 가져가면 아내가 성을 낸다. 나는 다짜고짜 휴대폰을 꺼내 신림동 사시는 누님에게 전화를 한다. 한 시간 뒤에 갈 테니 꼼짝 말고 집 지키라고. 전화할 데가 또 한 군데 있다. 요기 가까운 양재동에 사는 제자다. 그에게 또 전화를 한다.
“선생님 잠깐 들릴 테니 우체국 앞에 나오렴.”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밭에 들어선다.
커다란 종이가방으로 상추를 한 가방씩 따 담는다. 상추만 먹으면 질릴 테지, 하고 쑥갓, 깻잎, 토마토, 고추도 따 넣는다. 그리고 또 하나 꼭 가져가야 할 것. 샐러리다. 땅이 좀 수구져 그런지 샐러리가 잘 컸다. 샐러리 대궁이 물오른 해바라기 줄기만큼 실하다. 그걸 한 가방씩 또 따서 싣고는 달린다. 차 안에서 시들까봐 에어컨을 충분히 켜고 속도를 낸다. 시원한 에어컨이 채소 시드는 걸 막는지 어떤지 그건 나도 모른다. 내 엉터리 상식이다.
평소에 주말농장에 오면 채소 대충 따서 차에다 두고 마을길을 한 바퀴 돌며 이것저것 시골풍정을 구경했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옛골로 해서 고등동 저수지를 지나 서울비행장을 돌아 세곡동으로 느긋하게 왔다. 실은 그 재미로 주말농장을 한지 7년이 됐다.
근데 늦봄은 다르다.
그렇게 여유를 부릴 새가 없다. 복잡한 양재대로에 들어서자마자 잽싸게 오른쪽으로 붙는다. 그 근방에 중학교 때 가르친 제자가 살림을 차리고 산다. 아이가 둘이다. 무엇보다 내가 주는 채소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 집을 찾아 들어가면 절차가 성가셔질까봐 그냥 우체국 앞에 나오라 한다.
그는 꼭 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나와 내게 인사를 시킨다. 늘 보아도 늘 예의바르다. 그의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샐러리다. 언젠가 내가 너무 많이 주어서 그랬던지, 샐러리와 사과를 넣은 물김치를 만들어 우리 집에 가져오기도 했다. 음식 만드는 걸 특히 좋아해 주고도 더 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따온 걸 길에서 얼른 겐네고 나는 또 부랴부랴 신림동 누님댁으로 향한다.
손위 누님이라 부담없이 툭하면 가 뵙곤 한다. 매형도 나와 똑 같은 월급쟁이인데 사는 형태가 맞벌이 부부인 우리와 다르다. 시간에 부대끼는 아내는 먹을 것도 딱 먹을 만큼 간촐하게 산다. 거기 비해 누님은 아니다. 마늘을 사도 몇 접씩 사고, 더덕을 사도 상자째 산다. 가끔 가면 갈 때마다 마늘 한 접을 뚝 떼어주고, 더덕 반 상자를, 검정콩 두어되를, 북어 몇 마리를 성큼 나누어 주신다.
그걸 받아오는 우리는 나누어 드릴 게 없다. 서울살이란 게 다 뻔하잖은가. 솔직히 우리가 가진 것으로 나누어 드릴 게 없다. 그래 한다하는 게 누님 관절에 좋다는 약을 사거나, 스카프를 사거나, 아니면 시장에서 과일을 사다 드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나누는 게 아니다. 그냥 쉬운 대로 사다드리는 것이니 내 것을 떼어내는 기쁨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주말농장을 하면서부터 나도 나눌 것이 이렇게 생겼다.
토요일이든 평일이든 주말농장에서 남부순환로를 타고 신림동으로 가는 길은 정체가 심하다. 심해도 보통 심한 게 아니어서 그냥 한 30여분이면 갈 길인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도 내가 기른 채소를 나누어 드린다는 마음에 차 막히는 줄 모른다.
누님 집앞에서 가져간 야채를 내려 드리고는 곧장 돌아선다. 뭐든 좀 먹고가라고 붙잡아도 막무가내고 온다. 그래야 다음에 또 쉽게 들를 수 있다. 누님이 차 안에 던진 물 한 병으로 땀을 식히며 와도 밥을 배불리 먹고 오는 것보다 즐겁다. 무엇 때문인가. 동생 노릇을 하는 것 같아 그렇다. 그 노릇을 하게 하는게 내가 지은 채소다.
봄엔 채소의 발육이 비약적이다. 따고 돌아서서 다시 보면 또 딸만큼 순식간에 큰다. 그러니 밭에 갈 때마다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가져가는 채소는 아파트에서 만나는 세 사람에게 무조건 다 드리는 게 어때?”
채소를 싣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 물어본다.
“그거 좋은 발상이네.”
아내가 성큼 대답한다.
아내도 내가 가져가는 이 많은 채소 때문에 봄이면 걱정이 태산이다. 길 건너 언니집이며 조카들에게 나누어주고도 남는다. 나중엔 직장 동료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러자면 집에 오는 대로 그분들의 집을 찾아가야 한다. 집을 찾아가면 부담을 느낄까봐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놓고 전화를 건다. 찾아가시라고. 그것도 수고라면 수고다.
그런데 그런 수고없이 쉽게 나눌 수 있는 일이 그 방법이다.
아파트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가 아는 분이든 낯모르는 분이든, 경비아저씨든, 초등학교 학생이든 구분없이 드린다.
그렇게 채소 상자의 채소를 다 나누어 주고 집에 들어서면 뿌듯하다. 그 덕에 좋아지는 것이 있다. 아내나 나나 인심이 후해진다는 거다. 이게 다 땅 덕분이다. 땅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주는 거다. 예전엔 나누어줄 것이 없었는데 채소 덕분에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다.
흙의 본성은 부지런하다. 씨앗 한톨 떨어뜨리면 그걸 나누어 먹을 수 있을 만큼 잘 키워준다. 흙은 너그럽다. 그 까닭에 사람조차 너그럽게 만든다. 흙을 만지고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팍팍하던 성정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지친 내 몸이 파랗게 되살아 난다. 그게 흙의 힘이고 그 흙에서 자란 생명의 힘 때문이다.
나는 좀전에 받은 문자 메시지의 답장을 한다. 더듬더듬 낱글자를 골라친다.
“설 잘 쇠시고 나이도 한 살 잘 자시기 바랍니다. 권영상”
그러고는 ‘전송’를 꾹 누른다.
지금쯤 농장주인이 ‘어, 문자 왔다!’ 그러며 휴대폰을 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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