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터골 3

빛바랜 사진 액자

빛바랜 사진 액자 권영상 너무 성급한가? 왠지 봄 느낌이다. 순간 청계산 매봉이 떠올랐다. 나는 집을 나섰다. 양재역 근처에서 안양행 버스를 타고 인덕원에서 내렸다. 거기서 다시 청계사로 가는 택시를 탔다. 청계사에서 원터골로 가는 코스를 몇 번 산행해 본 경험이 있다. 청계사 주차장에서 내려 매봉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 올랐다. 이미 산도 봄 느낌이다. 생강나무 꽃눈이 노랗다. 길옆에 쌓인 가랑잎을 들추니 봄이 파랗게 숨어있다. 오랜만에 왔지만 산은 그대로다. 그때 그 바위를 타고 오르던, 척박한 바위 사이로 뿌리내리며 살던 그 다복솔 숲을 지나 매봉에 올랐다. 멀리 뿌연 하늘을 바라보려니 문득 고향이 아득하다. 아직 정초라 그런가. 고향이 떠오르고, 이제는 계시지 않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나는 매봉에서..

비 내리는 날의 청계산

비 내리는 날의 청계산 권영상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차를 몰아 청계산으로 향했다. 원터골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이 정도 비라면 산을 오르기에 더운 날보다 오히려 낫다. 날 좋은 날 가뿐한 산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산도 좋지만 잔비를 맞으며 오르는 산도 좋다. 7월의 묵중한 청계산은 숨 가쁠 정도로 녹음이 우거졌다. 간밤부터 내린 비에 늙은 나무들이 더러 쓰러져 있다. 거친 세상을 살아왔으면서도 요만한 부슬비에 또 힘없이 쓰러지는 게 나무들이다. 쓰러진 나무 하나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 나무를 비키느라 길을 돌아갈 때다. 이쪽 우묵한 골짜기 안의 떡갈나무 숲이 손짓하듯 나를 부른다. 나는 가던 길을 두고 그쪽으로 성큼 들어섰다. 쿨쿨거리던 산 물소리가 슬몃 사라지고, 우묵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