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나무 2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권영상 남부순환로 앞에 서면 내 눈이 건너편 산으로 간다. 신호를 기다리며 먼데 산을 바라보는 일은 좋다. 특히 이맘쯤 북향의 산비탈은 더욱 좋다. 거기엔 남향보다 북향을 좋아하는 나무숲이 있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진달래, 귀룽나무, 오리나무 등이 그들이다. 이들 나무는 대개의 나무들과 달리 남향을 꺼린다. 남향엔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는 햇빛이 있지만 햇빛 때문에 수분이 머무는 시간이 짧은 게 문제다. 그런 탓에 이들 나무는 햇빛보다는 물기를 머금고 있는 서늘한 북향을 가려 산다. 요사이 산을 바라보면 산빛이 붉다. 정확히 말하면 자주에 가까운 붉은빛이다. 오리나무가 개화하기 때문이다. 오리나무도 꽃 피냐 하겠지만 오리나무도 꽃 핀다. 말은 쉽게 하지만 나도 오리나무꽃은 보지..

가을비 내린 아침

가을비 내린 아침 권영상 간밤 가을비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연다. 마당에 그 좋던 느팃잎이 다 떨어졌다. 아침을 챙겨먹고 아파트 뒤쪽 후문을 나섰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느티나무 숲이 황량하다. 여기라고 다를 게 없다. 번개와 천둥을 거느리고 온 가을비가 느팃잎을 모조리 떨어뜨렸다. 한길가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 또한 길 위에 노란 잎을 수북수북 쏟아냈다. 그 요란하던 가을의 작별도 이렇게 끝났다. 가을은 고운 햇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낙엽들의 작별 축제를 싫도록 누리게 한 뒤 그 절정의 고비에서 비를 안겼다. 이제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들은 모두 이 지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축제는 끝났다. 바람과 함께 흩어지던 낙엽의 어수선함이며, 때로는 휘황찬란하던 몸짓이며, 마른 가지를 스치던 낙엽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