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남기고간 것들 권영상 아내가 동치미를 담그러 안성에 내려왔다. 간밤 소금에 굴려둔 무는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밭 정리를 하러 텃밭에 나왔다. 지난 번 강추위 예보에 서둘러 뽑은 무 밭 뒷모습이 꼭 우리의 뒷모습 같아 그간 부끄러웠다. 이랑마다 무 뽑은 그 판한 구멍들이며 여기저기 급한 대로 잘라놓은 무순들, 무 구덩이에 무를 묻느라 파헤친 흙들, 그리고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 이 자리에 무씨를 넣은 건 지난 8월 15일이다. 40년 그 이전부터 고향의 아버지는 어김없이 이 날 무밭에 무씨를 넣으셨다. 그것을 내가 물려받았다. ‘이랑은 굵게 무 상간은 넓게.’ 글 모르는 아버지의 무 키우시는 신념이다. 그러나 그건 아버지가 경작하시는 기름진 밭에는 맞는 말이지만 거름기 적은 이 안성 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