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3

강인한 것들

강인한 것들 권영상 점심으로 순대국을 먹고 나올 때다. 씨앗가게 앞을 지나던 아내가 길가에 내놓은 씨앗 자루 앞에 앉았다. 종자용 쪽파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씨알이 푸석푸석해 보였다. “쪽파는 뭣 하러 심으려고!” 나는 아내를 일으켜 세우려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지난해 아내는, 친구한테 얻은 쪽파 한 봉지를 심어 재미 본 경험이 있다. 아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쪽파 자루 안의 쪽파를 이리저리 헤집고 있었다. 나도 손을 넣어 쪽파를 만져봤다. 서서 본 내 판단과 다름없이 쭉정이에 가까웠다. 알맹이가 있다면 끄트머리쯤에 조그마한 마디 하나가 만져질 뿐 속이 비어있었다. 다음에 사지 뭐, 그 말을 하려는데 아내가 주인에게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대신 많이 드릴 게요. 8천원이요.” 했다. ..

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면 텃밭 생강두둑부터 나가본다. 농사일이 힘들다 해도 생강 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일만큼 힘들까. 아침저녁으로 물을 충분히 주지만 아직도 그들은 감감무소식이다. 강황 심은 두둑 역시 그렇다. 생강과 강황은 지난 4월 19일에 심었다. 심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이들의 늦은 출현이 잔인하다. 성장하기 좋은 계절을 외면하고 두 달씩이나 컴컴한 땅속에 머물러 있다. 남쪽 아열대가 그들의 고향이라 해도 우리나라 5월과 6월 기온도 그리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도 그들을 기다리는데 봄을 다 바쳤다. 그때에도 새순이 나오는 데 50여일이 걸렸다. 그때는 처음이라 이들 두둑을 파헤쳐 보고 싶은 유혹을 수시로 느꼈다. 식탁에 올라오는 생강이며 강황에 이런 기다림이 숨어있음을..

너는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너는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권영상 세상엔 기다리지 않고 되는 일이란 없다. 모두, 시간을 빌어 생겨나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샘에서 물 한 병을 받으려 해도 물 한 병 크기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배를 타고 섬을 벗어나려 해도 물이 들어올 때를 기다려야 한다. 세상 이치가 그런 줄 알면서도 가끔은 기다림의 시간에 짓눌려 본심을 잃거나 체통을 버릴 때가 있다. 텃밭에 작물을 심어놓고 기다릴 때도 그렇다. 봄이 기습적으로 마을에 들어와 마을을 마구 변화시키기 시작할 때는 더욱 그렇다. 감자 밭에 감자씨를 넣고 20여일을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마는 심어놓고 무려 55일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들판이 초록으로 변할 때에 55일의 기다림이란 솔직히 고통이다. 그보다 더한 기다림을 요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