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 3

오솔길엔 속도가 없다

오솔길엔 속도가 없다 권영상 호젓한 오솔길이 좋다. 낯선 산을 오를 때면 곧게 만들어 놓은 길보다 그 산 뒤편에 숨어있는 오솔길을 찾아 걷곤 한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좋다. 어린 생강나무나 단풍나무가 내 얼굴을 건드려 보려고 가지를 벋거나 내 발을 걸어보려고 뿌리를 슬쩍 드러내는, 그런 장난끼 있는 오솔길이 좋다. 나는 그들의 장난에 걸려들다가도 허리를 숙이거나 빙 에돌아 피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오솔길 걷기가 진짜 좋은 건 오솔길의 구불구불함 때문이다.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1분에 갈 거리를 5분에 간다. 더디 가는 길이 오솔길이다. 오솔길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낸 길이 아니다. 그냥 그 산의 생김새에 맞게 누군가에 의해 생겨난 길이다. 언덕이 있으면 올라가고, 올라가는 일이 힘에 부치..

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권영상 봄비 그친 뒤, 창문을 연다. 건너편 산이 봄물이 들어 연둣빛으로 우련하다. 아파트 마당은 봄비 끝에 꽃이 지천이다. 남향에 선 목련은 개화가 한창이고, 북향에 선 목련은 꽃부리가 터져나기 직전이다. 핀 지 사나흘 된 살구꽃은 절반이 지고 있고, 홍매화는 건재하다. 긴 겨울의 일상은 이 창 너머를 바라보며 시작 되었다. 마음 놓고 세상을 나서지 못하는 시절이고 보면 늘 거실 창문 앞에 서서 다가올 봄을 기다렸다. 그때 제일 먼저 내게 봄을 전해준 건 건너편 산의 오리나무 꽃이다. 오리나무에 웬 꽃이냐 할 테지만 눈 녹고 매운 바람 슬그머니 물러서면 오리나무는 긴 꼬리 모양의 꽃을 주렁주렁 매단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지만 먼데서 보면 산은 오리나무 꽃으로 은은히 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