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방집 2

밤눈

밤눈 권영상 저녁을 먹고 창문을 여니 눈 내린다. 아침부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기온이 푹신하더니, 찬 기운이 슬쩍 돌더니, 고요할 만큼 조용하더니, 끝내 해 지자, 눈 내린다. 투벅투벅 찾아오는 눈이 밤늦은 손님 같다. 먼데서 무슨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오시는 나의 당숙 같다. 고향 집에 대사가 있을 적이면 강원도 대화 깊은 산골짜기에 사시는 당숙은 해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마당에 들어서셨다. 대문이 없었으니 에흠! 헛기침을 하며 들어오시는 당숙은 밤눈처럼 희끗한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셨다. 냉한 기운을 잔뜩 옷에 품고 들어오신 당숙은 술자리에 앉자마자 구수한 겨울 이야기를 풀어놓으시곤 했다. 몇 번이나 들었던 호랭이를 만나 서로 먼저 가려고 길싸움을 하시던 이야기, 술에 ..

멍키 스패너를 잡다

멍키 스패너를 잡다 권영상 가끔 길가에 펼쳐놓고 파는 공구들을 보면 걸음을 멈춘다. 뭐 꼭 살 것도 없으면서 괜히 허리를 구부리고 이것저것 들여다본다. 한번은 구청 마당에 서는 벼룩시장에 구경을 갔다. 거기 붐비는 마당에서 중고 공구들을 만났다. 중고라지만 내 보기에 새것들이었다. 쓸 곳도 없으면서 인젝션 롱노우즈며 플라이어를 샀다. 그 후, 아내도 이 일에 관심이 있는 걸 알고, 아내가 원하는 드릴을 사면서 발칸 스타일의 멍키 스패너도 샀다. 그게 무슨 사건의 발단이 된 걸까. 어찌어찌 안성에 조그마한 집 하나를 갖게 됐다. 그때 내가 제일 처음 만든 게 공구통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주워 모은 공구들로 나무를 켜고 박고 두드려 라면 상자만한 공구통을 만들었다. 그건 기쁜 일이었다. 나는 내처 뜰안에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