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밤눈

권영상 2022. 1. 13. 15:32

 

밤눈

권영상

 

 

저녁을 먹고 창문을 여니 눈 내린다.

아침부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기온이 푹신하더니, 찬 기운이 슬쩍 돌더니, 고요할 만큼 조용하더니, 끝내 해 지자, 눈 내린다.

투벅투벅 찾아오는 눈이 밤늦은 손님 같다. 먼데서 무슨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오시는 나의 당숙 같다. 고향 집에 대사가 있을 적이면 강원도 대화 깊은 산골짜기에 사시는 당숙은 해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마당에 들어서셨다. 대문이 없었으니 에흠! 헛기침을 하며 들어오시는 당숙은 밤눈처럼 희끗한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셨다.

 

 

냉한 기운을 잔뜩 옷에 품고 들어오신 당숙은 술자리에 앉자마자 구수한 겨울 이야기를 풀어놓으시곤 했다. 몇 번이나 들었던 호랭이를 만나 서로 먼저 가려고 길싸움을 하시던 이야기, 술에 취해 이틀이나 당숙모를 껴안고 자고나 보니 그게 당숙모가 아니라 산중 곰이더라는 이야기, 눈 귀신에 홀려 산부리를 건너뛰고 벼랑을 뛰어내리실 적에 도깨비를 만났고, 그 도깨비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지쳐 이승을 떠나시던 이야기…….

대화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말할 수 없이 깊은 산골이다.

 

 

눈 내리면 지붕이 땅에 닿을 정도로 지붕 땅 구분이 없다는 거다. 이웃 간의 인사는 눈 굴을 파고 다니며 하는데 여보게! 잘 있는가, 밥은 안 굶는가. 아픈 데는 있는가 없는가, 노모께선 안녕하시고, 송아지 암탉은 모두 잘 계시는가. 그런 인사를 하신댔다.

그렇게 삼동을 눈 속에 갇혀 살다보면 백색 눈 빛에 질리고 질려 눈 멀미를 하고, 고적감도 병이라고 앓아누울 바로 그 직전에, 어찌어찌 날이 풀려 세상에 나오면 벌써 참꽃이 지고, 길섶에 수선화가 피는 초여름이더라는, 당숙의 말씀은 참으로 능청스러우셨다.

 

 

당숙께서 오시던 그날, 그 밤처럼 마당에 내리는 눈송이가 지금 굵다. 푸짐하다.

내리려거든 무릎이 빠지도록 푹푹, 아니 지붕이 땅바닥에 닿도록 푹푹 내렸으면 좋겠다. 시골 뜰방집이 장눈에 어떻게 갇혀버리는지 보고 싶다. 사흘낮 사흘밤을 굶주리다 굶주리다 굶주림의 그 끝에서 한번 살아나는 나를 보고 싶다.

 

 

지지난 해는 내가 바라던 대로 눈이 많이 왔다.

그때만 해도 먹고 사는 밥벌이 일이 있어 이러다 말겠지, 말겠지, 했는데 자고 나니 무릎이 넘도록 내렸다. 아침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서다가 요앞 언덕에 미끄러져 그냥 돌아왔다. 그 때 내게 비난이 몰려왔는데 겨울에 왜 시골로 내려갔느냐, 왜 눈 내리면 급귀가 하지 늑장 부렸느냐. 그러더니 말끝에 쌀은 있고, 라면은 있느냐,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 근심 걱정을 떨쳐내고 마당으로 나갔다.

눈을 뭉쳐 데굴데굴 데굴데굴 굴렸다. 굴리고 굴려 문간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철없던 시절에 만들던 눈사람을 다시 내 손으로 일으켜 세웠다. 마른 꽃대궁이로 눈썹을 붙이고, 코를 세우고, 입을 찍어 붙이고, 마주 웃었다.

한번 흘러간 세월은 영영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세월은 윤회처럼 이렇게 옛날 모습으로 해마다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가는 거다.

 

 

이 밤, 그 옛날의 겨울이 오고 있다.

이 밤, 그 옛날의 능청을 떠시던 당숙도 만나고, 저쪽 세상으로 건너가신 부모님이랑 백부님, 사촌들을 이렇게 다 만난다. 그분들 틈에 앉아 전설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저 어린것이 바로 나다. 젊은 아버지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유심히 듣고 있누나.

 

<교차로 신문> 2022년 1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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