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멍키 스패너를 잡다

권영상 2021. 1. 21. 16:37

멍키 스패너를 잡다

권영상

 

 

가끔 길가에 펼쳐놓고 파는 공구들을 보면 걸음을 멈춘다. 뭐 꼭 살 것도 없으면서 괜히 허리를 구부리고 이것저것 들여다본다. 한번은 구청 마당에 서는 벼룩시장에 구경을 갔다. 거기 붐비는 마당에서 중고 공구들을 만났다. 중고라지만 내 보기에 새것들이었다. 쓸 곳도 없으면서 인젝션 롱노우즈며 플라이어를 샀다. 그 후, 아내도 이 일에 관심이 있는 걸 알고, 아내가 원하는 드릴을 사면서 발칸 스타일의 멍키 스패너도 샀다.

 

 

그게 무슨 사건의 발단이 된 걸까.

어찌어찌 안성에 조그마한 집 하나를 갖게 됐다. 그때 내가 제일 처음 만든 게 공구통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주워 모은 공구들로 나무를 켜고 박고 두드려 라면 상자만한 공구통을 만들었다. 그건 기쁜 일이었다. 나는 내처 뜰안에 앉아 쉴 의자도 만들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그러고는 공구통을 잊고 말았다. 밤낮 공구를 들고 살 것 같았지만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 추위에 멍키 스패너를 유용하게 썼다.

 

 

강추위가 온다는 기상예보에 수도가 얼까봐 미리 안성에 내려왔다. 아파트와 달리 겨울철 뜰방집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실내 수도 동파다. 열흘씩 보름씩 집을 비우다보니 암만 수돗물을 졸졸 흘려놓는다 해도 영하 13.4도의 기온이 연장되면 마음을 놓기 어렵다.

동파를 막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방안 온도를 높이는 거다. 나는 내려오는 대로 보일러에 불을 틀고 온열기도 틀고 이틀 밤을 잤다. 그 사이 바깥엔 눈이 내렸고, 눈 내린 뒷날엔 밤이 깊어갈수록 방이 냉했다. 산 밑 최씨 아저씨네 소들도 추워 울었다. 그 소리에 깨어 일어나면 세면대 수도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확인하고, 싱크대 물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난 뒤 이불 속에 들었다. 암만 보일러 불을 튼대도 떨어지는 강추위를 막기는 어렵다. 코끝이 싸늘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긴 밤을 자고 일어났다.

 

 

결국 올 것이 왔다. 샤워기 물이 얼어버렸다.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정오 무렵부터 수도 녹이기를 했다. 샤워기 수도꼭지에 타월을 감고 커피포트에 끓인 물을 천천히 들이부었다. 한두 시간을 녹여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뜨거운 물보다 드라이어로 녹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말에 드라이어를 찾아들고 수도꼭지를 녹여나갔다. 쇠로 된 수도꼭지는 드라이어의 열에 뜨거워졌고, 뜨거워진 수도꼭지의 열은 배관 속 얼음을 녹일 걸 생각하며 애쓴 게 효과가 있었다. 인내의 한계점에서 비로소 물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나는 인내의 기쁨에 빠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수도 배관과 수도꼭지를 연결하는 이음새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열에 의해 이음새에 균열이 갔거나 뜨거운 물에 견디지 못해 균열이 갔을 수도 있었다.

물은 이음새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때 떠오른 게 있었다. 멍키 스패너였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나 공구통의 스패너를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이음새를 물고 있는 너트를 가볍게 돌렸다. 이게 바로 공구의 힘이다.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던 물은 그 잠깐의 힘으로 뚝 그쳤다. 나는 꽉 잡은 멍키 스패너를 치켜들었다. 스패너의 이 억센 이빨을 보면 동파가 다시는 덤벼들지 못할 것 같았다.

 

 

올겨울은 처음부터 추위 맛이 남다르다. 호락호락 넘어갈 동장군이 아니다. 암만 멍키 스패너의 성능이 좋다해도 그걸 다시 잡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