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3

가을이 남기고간 것들

가을이 남기고간 것들 권영상 아내가 동치미를 담그러 안성에 내려왔다. 간밤 소금에 굴려둔 무는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밭 정리를 하러 텃밭에 나왔다. 지난 번 강추위 예보에 서둘러 뽑은 무 밭 뒷모습이 꼭 우리의 뒷모습 같아 그간 부끄러웠다. 이랑마다 무 뽑은 그 판한 구멍들이며 여기저기 급한 대로 잘라놓은 무순들, 무 구덩이에 무를 묻느라 파헤친 흙들, 그리고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 이 자리에 무씨를 넣은 건 지난 8월 15일이다. 40년 그 이전부터 고향의 아버지는 어김없이 이 날 무밭에 무씨를 넣으셨다. 그것을 내가 물려받았다. ‘이랑은 굵게 무 상간은 넓게.’ 글 모르는 아버지의 무 키우시는 신념이다. 그러나 그건 아버지가 경작하시는 기름진 밭에는 맞는 말이지만 거름기 적은 이 안성 텃..

메주콩을 쑤는 옆집

메주콩을 쑤는 옆집 권영상 기온이 점점 떨어진다. 그럴수록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진다. 바깥에 나갈 일도 그만큼씩 점점 줄어든다. 방안에서 미적대다가 9시가 넘어서야 마당에 슬쩍 나가본다. 뜰마당에 하얗게 내린 서리가 아침 햇빛에 다 녹았다. 사철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사는 수원집 이쪽 마당 끝에 안 보이던 내걸이솥이 놓였다. 장작불이 저 혼자 활활 탄다. 뭘 끓이는 모양이다. 잠시 만에 그 집 내외분이 나오더니 솥뚜껑을 연다. 하얀 김이 뭉긋 솟는다. 김을 헤치고 내외분이 솥 안을 들여다본다. “뭐 맛난 거 끓이시나 보죠?” 아침 인사삼아 여쭈었다. 그제야 그들 내외분도 나를 보았는지 허리를 편다. “저어!” 수원집 아저씨가 운을 떼어놓고는 곁에 선 아내에게 대답 기회를 넘긴다. “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