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오름 3

사람을 더 믿는 새들

사람을 더 믿는 새들 권영상 차를 몰고 다랑쉬오름을 향해 달려 갈 때부터다. 조금씩 내리던 눈발이 거칠어졌다. 오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눈과 바람이 휘몰아쳤다. “저기 저 조그마한 오름이나 가 보고 말지 뭐.” 아내가 눈보라 사이로 보이는 아끈다랑쉬 오름을 가리키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이런 날 다랑쉬오름을 오른다는 건 내가 보기에도 무리인 듯했다. 할 수 없지 뭐,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무슨 까닭인지 눈보라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나는 아내를 달래어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다랑쉬오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좁은 계단 길을 걸어 오를수록 바람은 제주 바람답게 거세었다. 달리 바람을 피해 오를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계단 길 주변의 나무들도 바람 때문인지 키가 작았다. ..

다랑쉬 오름에서 돌아오다

다랑쉬 오름에서 돌아오다 권영상 다랑쉬오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2시. 하늘이 무너질 듯 눈이 내렸다. 눈도 눈도 참 어마어마하게 내렸고, 바람도 바람도 참 소문난 제주 바람답게 불었다. “이런 날씨론 난 못 올라가. 가려면 당신이나 가.” 아내가 차창 밖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손사래를 쳤다. 혼자라면야 바람에 날려 산비탈에 쳐박힌다거나 눈길에 미끄러져 변고를 겪는다 해도 오른다면 오르겠다. 근데 곁에 아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진다. 한낮인데도 점점 어두컴컴해지고, 지금으로 보아 눈 그칠 기미는 없어 보였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니 험한 날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숙소에서 타온 커피 한 잔을 따랐다. 바람과 바람 사이를 틈타 문을 열고 근방에 계실 천지신명께 커피 한 모금을..

드디어 지구를 탈출하다

드디어 지구를 탈출하다 권영상 드디어 제주로 간다. 이건 뭐 지구를 탈출하는 기분이다. 2박 3일 코스인데 마치 코로나가 결코 없는 혹성으로 이민을 가는 것 같다. 내가 살던 곳이여 안녕! 함께 울고 웃던 벗들이여, 친지들이여, 후배들이여, 안녕! 강아지 난나야. 창가에 크는 부켄베리아야, 혼자 가는 내가 미안하다. 부켄베리아 꽃그늘에 집을 둔 십자매야, 너희들 밥은 또 누가 챙겨주나.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이민은 안 되겠다 싶다. 나는 달뜬 마음을 한번 가다듬는다. 돌아보니 해마다 1월이면 제주에 갔다. 그런데도 갈 때마다 제주는 타국 같다. 안달루시아나 마드리드, 그것도 아니면 뭄바이, 또는 룩소르의 어느 붉은 야자수 사원이 있는 나라 같다. 남국이다. 남국 중에서도 수많은 오름을 거느린 오름의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