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3

전기가 나갔다

전기가 나갔다 권영상 어제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안전검사와 보완공사로 오늘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전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건 며칠 전부터 엘리베이터 게시판에서 보아왔다. 그때만 해도 아, 그런 모양이구나 하고 말았다. 근데 오늘, 아침 산행을 마치고 9시쯤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아파트를 떠나고 있고, 엘리베이터는 멈추어 있었다. 계단을 걸어 오르는 내게 정전의 현실감이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가려던 곳을 떠올렸으나 막상 가려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았다. 식사나 하려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나의 바깥 세상과 관계해 보려는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가을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 하루를 차분히 생각했다.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거기였다. ..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권영상 오랜만에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려면 남한산성 길을 타야 한다. 남한산성에서 하남시로 가는 동문을 빠져나오면 주차장 겸 휴게소가 나오고 그쯤에서 우회전을 하면 그곳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 끝엔 내 마음이 가고 싶어하는 조그마한 음식점이 있다. 나는 가끔 나에게 친구처럼 잘 대해 주고 싶을 때면 차를 몰아 남한산성 길에 들어서곤 했다. 집에서 차로 간다면 40여분 거리.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여도 생각난다고 대뜸 가지는 곳이 아니다. 아무라 가깝다 해도 한번 나가려면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 쉽게 나서지 못한다. 내일 가자고 하면 내일 문득 다른 일이 나서고, 주말에 가자고 하면 그런 날엔 필시 바깥 일이 생긴다. 밥 한 끼 먹으러 혼자 떠나는 일에도 얽히고설킨 관계..

목침을 베고 눕다

목침을 베고 눕다 권영상 연일 폭염이다. 여름이라면 당연히 더울 일이다. 하지만 겪어볼수록 폭염의 강도가 해마다 세지는 느낌이다. 밤잠을 설치다 보니 자연 한낮이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간단한 자리를 깔로 목침을 찾아 벤다. 여름엔 역시 목침이 좋다. 머리 밑이 후텁하지 않아 좋고, 두피 마사지도 되고, 그 딱딱한 소나무 질감과 나무향이 무엇보다 좋다. 몇 해 전이다, 예전에 살던 곳을 찾아 남한산성 길을 타고 오를 때다. 산 구비를 돌아가는 어느 지점에 아담한 사찰이 나왔다. 중수를 하려는지 절 마당 한켠이 목재로 가득했다. 목수 두어 분이 잠시 쟁기를 놓고 땀을 닦고 있었다. 절 마당으로 나 있는 길을 건너는데 내 눈에 잘려나간 나무 도막 하나가 들어왔다. 나무 도막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보는 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