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복숭아나무 2

마음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

마음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 권영상 되게 할 일 없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무료하다. 사는 의미가 좀 묘해진다. 이런 날이 길어지면 술을 찾게 되고, 술이 길어지면 우울해진다는 말이 남 말 같지 않다. 살다가 이런 변고도 다 겪는다. 무씨 넣은 밭이 가물어 무씨 안 날까봐 엊그제다, 안성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소낙비에 무씨는 잘 났다. 그 주된 걱정이 해결되어 그런가 보다. 심심해도 혼자 잘 놀았는데 도무지 의욕이 없다. 비는 하루 종일 한 줄금씩 한 줄금씩 내려 무밭에 물 줄 일을 제가 알아서 다 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무료하고 심심하고 갑갑하다. 심심한 내 눈에 방바닥을 기는 개미가 보인다. 머리카락 한 올이 보이고, 식탁 꽃병에 꽂아놓은 꽃에서 파란 벌레 똥이 톡톡 떨어진다. 소나..

가을을 부르는 코스모스

가을을 부르는 코스모스 권영상 올 여름에 대한 기억이라곤 장맛비 말고는 없다. 억수같은 비로 시작해 억수같은 비로 막을 내렸다. 비의 입장에서 본다면 열연이다. 그러나 수모를 당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참혹한 결말이다. 텃밭은 미처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몇 날 동안 물에 잠겼고, 뜰앞 나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비의 무게에 모질게 시달렸다. 뜰앞 꽃복숭아나무가 걱정이었는데, 결국 선 채로 반쯤 기우뚱해졌다. 지난 4월, 그가 피운 백설도화는 마을사람들의 입을 탔다. 그 꽃복숭아나무가 뜰을 건너오는 잔인한 비바람에 힘을 잃자, 부랴부랴 버팀목을 해주었다.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홈통이 막혀 추녀끝 빗물받이가 빗물로 넘쳐났다. 우중에 차를 몰고 읍내에 나가 사다리를 구해 지붕에 올라가 봤다. 역시나였다. 까마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