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복숭아나무 3

11월의 폭설

11월의 폭설권영상   간밤에 아내를 서울로 보내놓고 잠을 설쳤는데 자고나니 뜻밖에 눈이 오네요.세상에! 아직 11월인데, 11월의 첫눈치고 느닷없이 왔고, 그 양도 많네요.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우두커니 눈을 내다봅니다.길 건너 고추밭이며 마을 집들, 한때 무성하던 나무들이 이미 눈 속에 다 묻혀버렸네요. 데크에 쌓인 눈을 보아하니 10여 센티는 될 것 같습니다.아직 설레는 마음이 있어 휴대폰 카메라로 눈 풍경을 찍어 아내에게 보내고, 지인들에게 선물인양 보냈지요. 달려간 카톡은 이내 기쁘게 돌아왔죠. 그쪽에도 지금 한창 눈이 내린다는 소식입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창문을 여니 상황이 돌변했습니다.치고 들어온 눈이 친 만큼 또 쌓였습니다. 펄펄이 아니라 펑펑입니다. 하늘이 점점 검어지며 침묵이 깊습니..

마음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

마음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 권영상 되게 할 일 없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무료하다. 사는 의미가 좀 묘해진다. 이런 날이 길어지면 술을 찾게 되고, 술이 길어지면 우울해진다는 말이 남 말 같지 않다. 살다가 이런 변고도 다 겪는다. 무씨 넣은 밭이 가물어 무씨 안 날까봐 엊그제다, 안성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소낙비에 무씨는 잘 났다. 그 주된 걱정이 해결되어 그런가 보다. 심심해도 혼자 잘 놀았는데 도무지 의욕이 없다. 비는 하루 종일 한 줄금씩 한 줄금씩 내려 무밭에 물 줄 일을 제가 알아서 다 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무료하고 심심하고 갑갑하다. 심심한 내 눈에 방바닥을 기는 개미가 보인다. 머리카락 한 올이 보이고, 식탁 꽃병에 꽂아놓은 꽃에서 파란 벌레 똥이 톡톡 떨어진다. 소나..

가을을 부르는 코스모스

가을을 부르는 코스모스 권영상 올 여름에 대한 기억이라곤 장맛비 말고는 없다. 억수같은 비로 시작해 억수같은 비로 막을 내렸다. 비의 입장에서 본다면 열연이다. 그러나 수모를 당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참혹한 결말이다. 텃밭은 미처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몇 날 동안 물에 잠겼고, 뜰앞 나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비의 무게에 모질게 시달렸다. 뜰앞 꽃복숭아나무가 걱정이었는데, 결국 선 채로 반쯤 기우뚱해졌다. 지난 4월, 그가 피운 백설도화는 마을사람들의 입을 탔다. 그 꽃복숭아나무가 뜰을 건너오는 잔인한 비바람에 힘을 잃자, 부랴부랴 버팀목을 해주었다.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홈통이 막혀 추녀끝 빗물받이가 빗물로 넘쳐났다. 우중에 차를 몰고 읍내에 나가 사다리를 구해 지붕에 올라가 봤다. 역시나였다. 까마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