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
권영상
되게 할 일 없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무료하다. 사는 의미가 좀 묘해진다. 이런 날이 길어지면 술을 찾게 되고, 술이 길어지면 우울해진다는 말이 남 말 같지 않다.
살다가 이런 변고도 다 겪는다. 무씨 넣은 밭이 가물어 무씨 안 날까봐 엊그제다, 안성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소낙비에 무씨는 잘 났다. 그 주된 걱정이 해결되어 그런가 보다. 심심해도 혼자 잘 놀았는데 도무지 의욕이 없다.
비는 하루 종일 한 줄금씩 한 줄금씩 내려 무밭에 물 줄 일을 제가 알아서 다 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무료하고 심심하고 갑갑하다. 심심한 내 눈에 방바닥을 기는 개미가 보인다. 머리카락 한 올이 보이고, 식탁 꽃병에 꽂아놓은 꽃에서 파란 벌레 똥이 톡톡 떨어진다. 소나기 끝에 햇빛이 뒤쪽 창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앉더니 깜물 사라지고 바깥에 바람 분다.
엉덩이를 들썩하여 거실 밖을 내다본다. 건너편 산의 참나무 숲이 서로 부딪히며 비벼대느라 짐승처럼 운다. 바람도 바람도 오지게 분다. 경기도 전역에 강풍주의보가 내렸다는 안전문자가 떠오른다. 뜰안 꽃복숭아나무가 몸부림친다. 키가 7미터는 넘는 나무다. 그런 나무가 바람에 멀쩡히 서 있을 리 없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온몸으로 싸움질하듯 흔들린다. 저러다가 뿌리째 뽑힐까 싶어 마당에 뛰쳐나간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나무를 잡고 밀어본다. 바람의 힘이 이만저만 억센 게 아니다. 나무뿌리가 움켜쥔 흙을 놓을까 걱정이다. 나무에서 손을 떼기만 하면 나무가 뽑힐 것 같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이 새파랗다. 그 새파란 하늘에 하얀 솜구름이 북쪽으로 마구 날아간다. 참 묘한 풍경이다. 파란 하늘에 강풍이라니. 손을 놓자니 나무가 뽑힐 것 같고 붙들고 있자니 언제 그칠지 모르는 바람이다.
내가 없을 때 나무는 저 혼자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밤낮 싸웠겠다. 평소에도 보면 나무가 북방으로 기우뚱해져 있다. 나무도 사람과 같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난과 싸워야 한다. 처음엔 나무에 받침목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받침목이 부대끼는 바람에 나무둥치에 상처가 움푹 났다.
나는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 바람을 받는 나뭇가지를 나무둥치에 듬성듬성 묶어주었다. 그러고는 손을 뗐다.
바람을 받아 몸부림치는 건 꽃복숭아나무만이 아니다. 모퉁이방 창가에 서 있는 중국단풍나무도 그렇다. 꽃복숭아나무와 달리 옆으로 퍼지며 자랐는데 크기도 크지만 땅을 딛고 선 둥치가 믿음직하다. 튤립모양의 초록잎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가 가을날의 소낙비 소리 같이 투명하고 유쾌하다. 같은 바람이어도 받아내는 몸짓이 예쁘다.
내게선 무슨 소리가 날까. 나는 모자챙이 뒤로 가도록 거꾸로 쓰고 뜰 마당에서 두 팔을 벌린다. 몸이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새처럼 날아오르는 시늉을 한다. 보오보오, 내 입안을 돌아나가는 바람에서 빈병소리가 난다. 휘파람소리 같은. 별일 없어서 무료하고 심심하기만 한 내 몸이 잠시지만 빈병처럼 맑아졌나 보다.
두 팔을 잔뜩 벌리고 아, 입을 연다. 귓등으로 보오보오 휘파람 소리가 날아간다. 껑충 뛰기만 하면 새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겠다는 소년 적 생각이 든다. 새가 되어 먼 하늘로 날아간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두렵다. 무료하고 심심하더라도 그냥 여기 살면서 바람 불면 가끔 마당에 나와 새가 되는 시늉이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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