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등뻐꾸기 2

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면 텃밭 생강두둑부터 나가본다. 농사일이 힘들다 해도 생강 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일만큼 힘들까. 아침저녁으로 물을 충분히 주지만 아직도 그들은 감감무소식이다. 강황 심은 두둑 역시 그렇다. 생강과 강황은 지난 4월 19일에 심었다. 심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이들의 늦은 출현이 잔인하다. 성장하기 좋은 계절을 외면하고 두 달씩이나 컴컴한 땅속에 머물러 있다. 남쪽 아열대가 그들의 고향이라 해도 우리나라 5월과 6월 기온도 그리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도 그들을 기다리는데 봄을 다 바쳤다. 그때에도 새순이 나오는 데 50여일이 걸렸다. 그때는 처음이라 이들 두둑을 파헤쳐 보고 싶은 유혹을 수시로 느꼈다. 식탁에 올라오는 생강이며 강황에 이런 기다림이 숨어있음을..

검은등뻐꾸기의 섬뜩한 생애

검은등뻐꾸기의 섬뜩한 생애 권영상 불을 끄고 누웠는데, 건너편 산에서 뻐꾸기가 운다. 검은등뻐꾸기다. 이슥한 5월 봄밤의 자정, 뻐꾸기 소리가 산을 울리고, 마을을 울리고 방안을 찡 울린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지금은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인데 뻐꾸기만 홀로 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에 올라간다. 건너편 산 쪽으로 난 창문을 연다. 보름 어간이라 달빛이 낮처럼 환하다. 길 건너 고추밭이며 마을집들이 손금을 보듯 환한 밤, 건너편 참나무 숲엔 검은등뻐꾸기가 잠들지 못하고 있다.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은 밤이어도 들어보면 안다. 한결같이 네 음절로 반복해서 운다. 저것이 이 이슥한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우는 까닭이 뭘까. 검은등뻐꾸기는 대만이나 필리핀 그쯤에서 월동을 하고 우리나라로 찾아오는 여름 철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