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지빠귀 5

참새야, 미안해

참새야, 미안해권영상  참새 깃털하나길섶에 떨어졌다. 오늘밤요만큼참새가 추워하겠다.  -‘깃털’  솔직히 참새에 대해 미안한 게 많다. 내가 쓴 시들 때문이다.참새들은/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지 않고 / 편안히 사는 데 쓰지.// 개똥지빠귀도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어/ 험난한 시베리아로/ 날아가는데 쓰지. ‘지도’라는 시다.  듣기에 따라서는 텃새와 철새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도에 얽매여 경계를 넘지 못하는 참새들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 나는 그때 그걸 발표해놓고 혹시 어떤 참새분이 쩝쩝 입맛을 다실까봐 걱정했다.  ‘참새의 하늘’이란 시에서는 참새는 마을 초가지붕 높이 이상의 푸른 하늘을 탐내지 않는다고 쓴 적도 있다. 그 시 역시 빈정거림이 약..

꽃숲에서 동박새를 만나다

꽃숲에서 동박새를 만나다 권영상 4월, 꽃이 지천이다. 겨울을 견뎌낸 목숨들을 위해 자연이 보내는 찬사가 아닐까 싶다. 작은 미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겨울이란 누구에게나 혹독하다. 목숨을 위협하는 추위와 미물들에게 물 한 방울 내어주지 않는 건기의 목마름은 잔인하다. 먼 바다 건너 남지나 반도에 사는 각시메뚜기는 바람을 따라 북상해 우리나라에서 어른벌레로 겨울을 난다. 그들은 다른 곤충들이 알을 낳고 떠나는 것과 달리 낙엽더미나 돌틈에서 맨몸으로 추위의 강을 건넌다. 추위가 한계점에 이르면 몸안의 체액이 얼어 죽고 마는 각시메뚜기의 눈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슬픈 눈물자국이 있다. 4월에 피는 꽃은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축복의 선물이다. 마을마다 꽃이 한창이다. 매화가 피더니 산수유가 피고, 살구꽃..

가을을 떠나보내며

가을을 떠나보내며 권영상 가을이 떠나고 있다. 오랜 만남을 뒤로 한 채 떠난다. 가을도 사람의 사랑처럼 작별이어도 그리 매정한 작별이 아니다. 머뭇거리거나 가야할 시간을 놓치거나 그러면서 떠난다. 잠깐 산에 오르기 위해 아파트를 나선다. 길 위에 가을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우리가 잠든 밤에도 서둘러 떠나야할 만큼 가을은 갈 길이 먼 모양이다. 길이 온통 느팃잎으로 뒤덮여있다.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길을 따라 가을이 마을로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떠날 때는 이처럼 확연히 눈에 띈다.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가을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길 위에 내려선다. 혼자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모습도 곱지만 마치 순례자들처럼 여럿이 내려서는 모습도 아름답다. 건듯 부는 바람을 못 이겨 아주 뭉텅 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