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언제쯤 딸기잼이 올까

권영상 2016. 1. 2. 16:58

언제쯤 딸기잼이 올까

권영상

 

 

 

 

기다려도 딸기잼이 오지 않는다. 며칠 전, 인터넷 쇼핑몰에 딸기잼을 주문했다. 당일 배송이라기에 종일 초인종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허사였다. 늦은 오후에 독촉전화를 했다. 너무 바빠 그러니 조금 양해해 달라는 거다. 연말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믿었다. 그러고 하루 하루 하다가 닷새가 지났다.

 

 

잼 중의 잼은 역시 딸기잼이다. 적어도 내 입엔 토스트에 딸기잼이다. 내가 신청한 잼의 딸기는 국내산이고, 뭐니뭐니 해도 딸기 본연의 착한 맛을 살리는데 충실했다는 광고가 마음에 들었다. 일을 하다가도 택배차가 들어오는 아파트 정문을 내려다 보거나,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에 딸기 택배인가하고 몇 번이나 놀랐다.

 

 

 

내가 기다리는 딸기잼은 언제 올까. 문득 오래 전 내 곁을 떠나간 딸기잼이 떠올랐다. 그는 나보다 서너 살 젊었다. 얼굴이 딸기처럼 붉고 곱슬머리였다. 그때 그는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했다. 나이 마흔의 미혼이었다. 그는 내가 있는 학교에 부임해 오면서 학교가 멀지 않은 곳에 자취방을 얻어 자취를 했다. 후리후리한 키에 잘 생긴 그는 결혼보다는 제 손으로 손수 밥을 해먹고, 세탁을 하고, 조용히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퇴근길에 가끔 찾아가는 그의 방은 검소했다. 덩치에 비해 현미밥 소식을 했다. 그의 옷걸이엔 몇 안 되는 간소한 옷이 걸려있었고,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의존하기보다 조용한 명상을 즐겼다. 나는 가끔 그를 따라 그의 집 옥상에 올라가 별을 바라보곤 했다.

“사람이 꼭 행복해야 하나요?”

어느 날, 그는 옥상 긴 의자에 앉아 별을 보며 내게 물었다.

나는 그의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한 질문에 당황했다. 그러면서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의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이 세상에 행복하러온 사람들같이 행복, 행복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실망해요.”

그는, 행복은 필요한 거겠지만 행복을 소비하러 온 사람들처럼 행복을 뒤지며 다니는 모습들이 싫다는 거였다. 행복이란 말도 모른 채 순박하게 사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 행복, 행복을 찾는 이들보다 더 행복한 게 아니냐는 거다. 행복 맛에 길들여져 제 몸 하나 만족시키느라 행복에 취해 사는 이들이 얄밉다고도 했다.

 

 

 

그날 밤, 그는 내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늘의 별들을 자신의 마음 안으로 불러들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순수한 우주의 기운을 느낄 때가 참 좋다고 했다.

그와 가까워질쯤 해서 그는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가 떠난 지 오래 됐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가르쳐준 별을 마음 안에 불러들이는 명상을 애용한다. 그러면서 그가 왜 안정적인 결혼이며 직장을 버리고 훌쩍 떠났는지 조금씩 알아갔다. 행복이라는 욕망에 매달려 사는 도시의 삶이 불편했던 거다. 그는 오히려 간소한 삶을 사랑했다.

 

 

 

나는 가끔 내 곁을 떠나간 딸기잼을 기다린다. 아니 그의 간소한 정신을 내 몸에 맞게 길들여가는 나를 본다. 우리는 행복을 소비하러 여기 왔는가. 우리가 외치는 행복 말고 참다운 인생의 가치는 없는가. 딸기잼은 언제 올까. 딸기잼이 자꾸 기다려진다. 딸기 본연의 맛을 실린 딸기잼을 어서 토스트에 발라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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