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넘기며
권영상
지나간 달을 넘기고
새 달을 받는다.
이 아침
나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서른 개의
깨끗한 날을 받는다.
달걀 한 바구니처럼
굵고 소중한 선물.
어미닭이 달걀을 품듯
서른 개의 날들이
서른 개의 꿈으로 깨어나게 될 일을
곰곰 생각한다.
아빠 같은 나
권영상
아빠가 마시다 둔
물그릇 속을 들여다 본다.
거기
누가 있다.
눈이 보인다.
넓적한 앞니 두 대가 얼핏 보인다.
아빠 같기도 하고
아빠 같다고 생각하는
나 같기도 하다.
아빠가 지나간 자리마다
아빠는 아빠 같은 나를
언뜻언뜻 남겨놓는다.
병아리 한 놈
권영상
톡톡톡
달걀 속에서 소리가 난다.
아무도 그 안에 들어가는 걸
본 적 없는데
누군가 그 안에서 문을 두드린다.
달걀을 품고 있는 암탉도
지금 이 소리를 듣고 있을 테지.
탁탁탁!드디어 문을 열고
노란 빛 한 덩이가 걸어나온다.
언제 들어갔을까.
병아리 한 놈.
<동시마중> 201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