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외딴 집에 내리는 밤비

권영상 2014. 5. 13. 11:43

 

외딴 집에 내리는 밤비

권영상

 

  

 

 

 

칠흑 같은 밤, 비가 창을 친다. 예사 비가 아니다. 창을 두드리는 비의 손이 굵다. 창문을 열었다. 밤의 대지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창문 안으로 와락 밀려든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들판을 내달리는 비의 발소리가 비명에 가깝다.

그런데 또 하나, 빗소리에 개구리 울음소리도 섞여있다. 귀를 그쪽으로 모으면 개굴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이 요란하다. 마치 이명 환자의 귓속처럼 내 귀가 먹먹하다.

길 건너 800여 평 고추밭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무논이 나온다. 그리고 요 위쪽 벽장골로 가는 작은 언덕을 넘으면 그 너머가 또 넓고 넓은 논벌이다. 모내기할 날이 오늘내일이니 개구리 모여 놀기에 딱 알맞을 만큼 물이 담겨있다. 그러니 논벌의 개구리들에게 이 늦봄의 밤비는 축복인 셈이다. 이제 머지않아 번식을 해야 할 때다. 목청껏 울어야 짝을 구하거나 남의 짝을 빼앗을 수 있다. 울음소리가 천지를 흔드는 빗소리 못지않다.

 

 

 

 

방안 불빛이 투망처럼 날아가는 곳에 으름덩굴이 온몸을 뒤흔다. 그 아래 요즘 한창인 토끼풀 꽃이 낚시에 걸린 물고기들처럼 파닥댄다. 그들만 보아도 지금 밤비 오는 바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도 남겠다. 빗방울이 손등을 때리는가 싶더니 왈칵 풍우가 들이친다.

창문을 닫았다.

‘이런 밤 바깥에 한번 나가 보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후 아내가 서울에서 왔다가 오늘 오후에 올라갔다. 안성에 와 본지 두어 달은 되었다. 무엇보다 아내한테는 냉장고 속이 걱정이었다. 그걸 정리하러 왔다가, 옷장 속이며, 부엌 살림살이까지 정리하고는 철 지난 옷가지를 걷어가지고 갔다.

“밤부터 비 온다는 데 여기 있으면 뭘 해?”

그러며 함께 올라가자고 했지만 나는 일이 좀 있어서 하고는 혼자 올려 보냈다.

그 일이라는 게 밤비다. 늦은 밤 비 내리는 집에 혼자 좀 있어보고 싶었다. 서울에서도 아내 없는 집을 지켜본 적이 있지만 여긴 거기와는 다른, 좀은 외딴 집이다. 외딴 집에 혼자 집을 지키는 나이 먹은 사내를 보고 싶었던 거다.

 

 

 

 

나는 현관에 세워둔 우산을 들고 바깥에 나섰다.

비 오는 밤의 세상은 방안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무시무시하다. 우선 어둠이 늪처럼 깊다. 거기다가 건너편 산의 한창 잎이 피는 참나무들 몸부림치는 소리가 세상을 뒤집는 듯하다. 그들은 비와 바람과 그리고 어둠과 어울려 마치 협곡의 화적떼들처럼 달려들었다가 물러나고 또 달려든다. 숙련미가 떨어지는 젊은 관현악처럼 개구리들은 소란스럽게 울어대고.

빗속에 보이는 건 가로등불 뿐이다. 뽀얀 가로등불이 요기 여섯 집뿐인 조고마한 마을을 지키느라 안간힘을 쓴다. 한 보자기밖에 안 되는 불빛 안으로 비가 사선을 그으며 미친 듯이 내린다. 건너편 파란 지붕 할머니집도 불이 꺼졌다. 툭 하면 짖어대던 옆집 양형네 개는 이런 밤 숨을 죽이고 있다. 그도 이 비가 무섭겠다.

시야가 막힌 밤에 혼자 겪는 큰비는 두렵다.

아내는 집에 잘 들어갔는지.......

함께 올라가자고 할 때는 핑계를 대어 떠나보내 놓고, 홀로 이 비 오는 밤에 남아 떠나보낸 아내를 걱정한다.

 

 

 

 

불 켜진 내 방을 본다. 저 속에 나이 먹은 사내가 산다. 수십 년 직장에 휘둘리며 살았으니 이제 남은 인생은 책장을 넘기듯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겠다는 사내.

그게 욕심이 아닌가. 솔직히 고백컨대 사내는 욕심이 많다. 그 욕심 때문에 아내와는 늘 싸웠고, 자식과도 늘 티격태격이다. 가정보다는 바깥의 일에 마음을 두며 살아왔다. 몸에 밴 거라곤 가부장적 방식뿐이다. 가족의 편에 서려하기 보다 그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살기를 바란다. 늘 새로워지려 하나 그는 늘 그와 다른 진부한 인생을 산다.

그는 위선자다. 그의 방에 환하게 불은 켜져 있으나 그는 마치 컴컴한 어둠과 같다. 욕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입으로는 간소하게 살겠다지만 간소한 삶을 불편해 한다. 욕심을 버리겠다지만 그의 발걸음은 늘 욕심 쪽으로 다가간다. 깨끗이 살다가 깨끗이 가겠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그 말을 믿지 못해한다.

그가 저 불 켜진 방안에 산다. 그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그를 잘 모르겠다. 그를 이해하는 일이란 복잡하다. 때로는 전혀 그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로 단순치가 않다.

 

 

 

우산을 내리치던 비가 우산을 뒤집으려 한다. 이 밤의 비도 단순치가 않다. 제가 우산을 쓰겠다며 우산 속으로 덤벼든다.

나는 밤의 한가운데에서 물러나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간 아내는 저녁을 먹었는지…….

아내가 읽다가 두고 간 미술잡지를 들춘다.

창밖에서 바라보던 그 위선자 같은 사내의 방에 내가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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