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내가 만드는 나의 천국

권영상 2014. 5. 2. 16:06

내가 만드는 나의 천국

권영상

 

 

 

 

 

모판의 상추를 밭에다 내고 있을 때입니다.

“선상님, 고추 모종을 좀 드릴까요?”

길 건너편 파란 대문집 할머니가 나를 부르십니다.

“예.”

나는 대뜸 예, 했습니다.

고추 모종 서른 포기를 종묘사에서 사다가 심었습니다. 그렇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께서 제게 주시고 싶어하시는데 ‘심었습니다.’ 그러기가 오히려 민망했습니다.

제 대답에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든 고추모종을 들고 우리 집으로 오십니다. 할머니댁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데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바위를 쌓아 그 위에 지은 집이고 할머니댁은 그냥 고추밭 가에 지었으니 조금 낮습니다. 농가 사람들과 내왕하도록 지어진 집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농가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고, 그분들도 우리 집을 가끔 왕래합니다. 파란 대문집 할머니는 옆집 양형네로 돌아 들어오셨습니다.

 

 

 

제가 고추 모종을 받았습니다.

마당의자에 할머니를 앉혀드리고, 애호박 모종 다섯 포기를 드렸습니다. 단호박이나 그냥 호박은 뉘집이나 있겠지만 애호박은 귀할 것 같아 모판에 심었댔습니다. 가쁜 숨이 가라앉을 때쯤 사다놓은 쌍화탕 한 병을 드렸습니다. 그걸 마시면서 당신 집을 내려다 보시던 할머니가 한 마디 하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예요. 저 라일락.”

할머니집 마당에 보라색 라일락이 한창입니다.

그 향기가 할머니 옷자락에 묻어왔는지, 우리 집 마당에서도 은은하게 납니다.

한참 앉아 있던 할머니가 일어나셨습니다.

“우리 아들은 농사짓는 걸 싫어하는데 서울 양반이 참 이렇게.......”

그런 말씀을 하고는 가셨습니다.

뭐든 주고 싶어하는 아흔이 가까운 분이십니다.

 

 

 

나는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할머니가 앉으셨던 의자에 앉습니다.

파란 대문집은 마당이 넓습니다. 그 너른 마당을, 지붕으로 한번 썼음직한 함석으로 네모 반듯하게 빙 둘러세웠습니다. 어찌 보면 할머니의 커다란 우주 같습니다. 우주의 한가운데엔 봉긋한 꽃밭이 있고, 꽃밭엔 작약과 파랗게 핀 창포가 한창입니다. 그 앞자락엔 파꽃 피는 파밭입니다.

할머니 댁의 봄은 길가쪽 담장 안에 있는 앵두나무에서 시작됐습니다. 앵두꽃과 함께 동쪽 담장 곁에 철쭉이 피었댔습니다. 하얀 철쭉이었지요. 거실에 앉아 밥을 먹다가 고개를 앞으로 비쭉 내면 그 하얀 철쭉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오래된 집이라 철쭉나무도 잘 큰 감나무만 합니다. 지금은 보랏빛 라일락이 창고 앞에서 한창 향기를 뿜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천국이구나.’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었다’던 할머니가 남겨놓고 가신 말 때문인 듯 합니다. 자식들을 도회에 내 보내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터전은 저곳입니다. 작은 농가이긴 하지만 할머니의 성채나 다름없습니다. 오래전부터 한 그루 한 그루 좋아하는 꽃나무를 옮겨다 심으셨겠지요. 그러니 저기 저 마당은 할머니가 꿈꾸어오신 이상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향기로운 꽃나무가 있어 철철이 꽃이 피고, 꽃 지면 그 그늘에 앉아 상추며 쑥갓을 따 외롭겠지만 혼자 점심을 드시고, 때로는 천주교당에서 들으신 설교의 한 구절을 곰곰이 생각하실 테고......

할머니께서 손수 천국을 만드신다면 저러하겠지요.

 

 

 

바이블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천로역정’을 ‘세계명작동화’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번역된 원문을 읽었는데, 거기서 말하는 천국도 저와 별 다를 게 없었습니다. 늘 꽃피어 있는 길을 일행들과 함께 다니며 좋은 말씀을 듣고 좋은 생각을 하며 근심걱정 없이 사는 곳이 그곳이었습니다.

지금 여기는 그래도 그곳보다 하나 더 나은 것이 있습니다. 천국에 없는 희노애락입니다. 그게 있어서 여기는 거기보다 그래도 낫습니다. 꽃이 피고, 시들고, 지고 하는 슬픔과 비탄이 없다면 누가 이 지상에 살러 오겠습니까.

할머니가 저쪽 울담을 돌아오십니다.

손에 호미를 드신 걸 보니, 애호박을 심고 오시는 모양입니다.

“심으실 곳이 있었습니까?”

그렇게 소리쳐 여쭈어 보려다 말았습니다.

귀가 부실해서 듣기 힘들어 하십니다.

보면 알지요. 심을만한 곳이 있었으니 빈 손으로 오시는 거지요.

 

 

 

 

나는 일어나 내가 만든 집 둘레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내가 만든 천국이란 게 이렇습니다.

감자를 심고, 고구마를 심고, 고추 모종을 하고, 홍당무 씨를 넣었습니다. 호미가 마늘밭가에 던져져 있습니다. 상추 모종을 하기 전에 마늘밭 김을 매었나 봅니다. 내가 만든 천국이란 게 온통 땅을 파고 씨앗을 넣고 김을 매는, 일만하는 곳입니다. 퇴직한 나를 보고 누가 왜 일 안 하냐고 나무랄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서 먼 여기 안성까지 와서도 이렇게 놀지 못하고 일에 빠져 있습니다.

이게 내가 만든 나의 천국입니다.

뒷집 사람들은 마당 가득 잔디를 심고, 꽃을 심고, 스프링클러로 오후내내 물을 줍니다. 그러고는 밤이면 떠들썩하게 놀다가 다음 날 저들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나는 한심하네요. 아는 게 일이라 삽과 호미를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밤에는 늦도록 책을 읽거나 원고를 씁니다. 아내의 말처럼 나는 몸을 고단하게 하는 선수입니다. 그렇다고 나중에 일 없는 세상으로 가 편하게 놀며 살기도 싫습니다.

 

 

 

이렇게 일에 빠지게 된 건 20대 후반.

꼬박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고 간 반 고흐의 미친듯한 열정과 고흐가 사모한 농민화가 장 프랑시스 밀레, 노동을 숭상한 로댕과 로댕의 비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자신의 집 농노들을 풀어준 톨스토이, 톨스토이와 교류한 마하트마 간디, 그들을 알고부터였습니다. 그들은 마약처럼 한 시골 청년을 노동의 구렁텅이로 이렇게 밀어넣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일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참 잊었네요. 내가 숭상한 또 한 사람이 있었네요. 아버지입니다. 무지렁이 아버지는 늘 쟁기를 들고 논밭에서 사셨습니다. 그분의 몸에선 항상 흙내가 푸짐하게 났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분들 모두 좋은 말씀만 듣고 사철 꽃 피는 길을 걷는 천국에는 안 가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느 보리밭 들판에서, 아니면 작업장에서 머리가 뜨거워 미칠 지경이 되도록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깨거나 글을 쓰거나 감자밭 김을 매면서 자신의 천국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분들은 남이 만들어놓은 천국 같은데에 갈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모>를 쓴 미카엘 엔데 역시 인간이 죽어 갈 곳이 천국과 지옥뿐이라면 나는 거기엔 안 가겠다고 했지요. 그분들에겐 그분들만의 천국이 있으니까요.

나도 나중에 이쪽 세상 볼일을 다 마치면 내가 만든, 사시 노동이 있는 그런 곳을 택하여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모종  (0) 2014.05.09
제비가 돌아왔다  (0) 2014.05.06
조회 1만회, 다랑이논 그림  (0) 2014.05.01
여린 꽃잎들의 가혹한 희생  (0) 2014.04.28
봄밤의 그윽한 소쩍새 울음  (0) 201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