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봄밤의 그윽한 소쩍새 울음

권영상 2014. 4. 24. 17:11

봄밤의 그윽한 소쩍새 울음

권영상

 

 

 

 

아침에 토마토와 고추 모종을 청계산 자락 꽃시장에서 샀습니다. 벌써 열흘 전부터 토마토 타령을 아내에게 했지요. 그 말에 대뜸 서너 포기는 대저토마토를 심으라고 했습니다. 대저토마토, 왜 노새방울만큼 작고 껍질이 단단한 토마토 말이에요. 근데 가계 주인에게 말했더니 그건 남쪽 지방에서나 재배하는 거라기에 그냥 일반 토마토 모종만 샀습니다.

토마토도 심어보고 싶고, 고추도 심어보고 싶었습니다. 주말농장을 할 때엔 토마토 6포기, 고추 6포기가 고작이었지요. 그걸 심어놓고 옥이야 금이야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마가 지면 끝입니다. 작년에도 그랬습니다.

 

 

 

예전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는 토마토 농사를 크게 지으셨습니다. 나는 그때 아버지를 따라 토마토 씨앗을 온상에 심고, 본밭에 모종을 내고, 키우는 과정을 아주 잘 습득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안성에 집을 얻어 이런저런 농사를 지어보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향수 때문인 듯합니다.

어머니와는 대화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대화인가요. 어머니와의 대화는 주로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고 났을 때이지요. 그럴 때면 나는 그 분풀이를 온통 어머니에게 했지요. 어머니와의 대화라는 게 그런 정도입니다. 무슨 훌륭한 화제가 있어 대화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아버지에 대한 항거나 내 인생을 향한 이유없는 분노를 발산하는 과정에서 주섬주섬 이어가는 분질러진 나의 말도막과 어머니의 까닭없는 동조와 위로와 내 분풀이를 받아주는 식의 대화였지요.

 

 

 

그런 식으로나마 어머니와는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정말 대화랄 게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대화라는 것은 주로 내게 지시하는 발화가 전부입니다. 나의 대화라는 것 역시 단답형의 대답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그 발화와 발화 사이엔 말할 수 없이 성근 거리와 간극이 있었지요. 그 간극을 채우려면 몇 수례의 이유와 원인을 부어넣어도 메워지지 않겠지요.

아들이 나이를 먹어 아버지의 시절로 돌아가려는 것은 어쩌면 그때 그 아버지의 자리에 서 보려는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아버지의 자리에 서서 아버지가 왜 아들인 내게 그런 지시형의 말이나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려보고 싶은 거지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토마토와 고추 모종을 사들고 안성으로 내려가는 것도 실을 거기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김을 매시던 그 감자밭에 홀로 앉아보고, 그때 그 토마토 밭에 혼자 서보려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쉴 참이면 밭두둑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호젓이 피우셨고, 고단한 인생살이를 푸념처럼 노래하셨고, 김을 매시다 오좀이 마려우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쏴아 소피를 보셨지요.

그렇게 문득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안성에 내려간다는 말이 옳을 것 같습니다.

 

 

안성에 도착하였을 때는 11시 반쯤.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어 버튼을 누르고 마당에 나갔습니다. 한낮 볕이 뜨거워 모종을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돌아와 방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고, 우선 밀린 원고부터 썼습니다. 그 일을 오후 4시쯤까지 하고는 우정 일어섰습니다.

평소에 심을 자리를 정해둔 곳에다 토마토와 고추 오이 가지를 심고 나니 밭이 번듯해졌습니다. 흙묻은 호미 뒤축을 돌멩이에 두드려 털어냅니다. 힘들어 밭둑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그렇게 앉고 보니 이런 행위들 모두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것입니다.

“아무데고 좀 털썩털썩 주저앉지 말아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가끔 나무라셨지요.

“느이 아버지는 저렇게 제 한 몸을 가누지 못하신단다.”

어머니 말씀처럼 나도 아버지를 닮아 몸이 단단하지 못합니다.

몸을 잘 가누려면 우선 몸이 단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털썩 주저앉을 것도 좀 참았다가 적당한 자리에 몸을 놓지요.

 

 

 

모종을 하고, 물을 주고, 또 며칠 전에 심은 나무들까지 물을 주고 나니 해가 깜물 지고 말았습니다. 손발을 씻고 들어와 밥을 차리려니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무슨 소쩍새라니 하고 밥을 먹고 났습니다.

위층 창문을 닫으러 층계를 올라가다가 발을 멈추었습니다. 그 소쩍새 울음이 아직도 들립니다. 이층에 올라가 열린 창문 앞에 다가가니 소쩍새는 건너편 산에 있었습니다. 건너편 산이라 해봐야 채 오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입니다.

이미 어두워진 밤 조우쩡조우쩡, 소쩍새가 혼자 밤을 차지하고 웁니다. 나는 창에 턱을 괴고 서서 소쩍새 울음을 듣습니다. 밤에 듣는 울음이라 으스스한 기운이 돌았지만 고대 마음이 맑아집니다. 하늘엔 별도 이미 돋을 대로 돋았습니다. 풍뎅이 빛깔의 별과 마을길을 돌아 몰려온 밤과 그 밤에 혼자 외로이 우는 소쩍새울음과 그리고 그 울음소리를 듣는 나.

나는 점점 맑아지는 귀로 그윽한 소쩍새울음을 듣습니다.

 

 

 

아버지도 봄밤이면 가끔 저 울음소리를 들으셨겠지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계시는 안방으로부터 먼 사랑방에서 부부유별이라는 풍습대로 혼자 주무셨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지요. 평생을 그렇게 홀로 외롭고 무심한 사랑방을 지키셨지요. 그러시느라 고즈넉한 밤비소리도 혼자 들으셨을 테고, 마당에 떨어지는 쓸쓸한 만추의 오동잎 소리도 혼자 들으셨을 테고, 사각사각 겨울눈 내리는 소리도 혼자 들으셨을 테지요.

그뿐인가요. 깊은 밤 철둑길 너머 바다에서 들려오는 음울한 해저음도, 오늘 같은 밤이면 집 근방에 와 홀로 우는 소쩍새 소리도 들으셨겠지요.

 

 

 

그 소리를 오늘 내가 이 외딴 곳에 내려와 듣습니다. 옛날 외딴 사랑방에서 아버지가 홀로 들으셨을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딴은 이곳도 외롭습니다. 머나먼 우주 속에 오두마니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소리쳐 불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거리의 바깥에 혼자 놓여있는 기분입니다.

대화랄 것도 없이 사는 자식들, 상처받아도 혼자 그 상처를 아물려야 하고, 혼자 아픔을 삭여야 하고, 혼자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던 아버지가 옛날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보니 지금의 나나 그 옛날의 아버지나 크게 다를 것도 없습니다. 자식은 자식대로의 인생이 있어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없고, 아내는 예전의 사내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역시 함부로 넘지 못할 선이 있습니다. 그러니 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혼자 외로워해야 하고, 혼자 견뎌내야 합니다.

 

 

 

외딴 사랑방에 혼자 사시던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가는 길도 보셨던 모양입니다. 병석에 누워계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쟁기를 들고 나가 길가의 산수유나무 가지를 모두 치시고는 다음날 아침 그 길로 갈 길을 가셨습니다. 먼 길 가는 데 걸리적거릴까봐 나뭇가지를 치셨다는 겁니다.

사내에겐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볼 외딴방이 정말 필요합니다.

조우쩡조우쩡!

봄밤이 이슥하도록 소쩍새가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