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계모 사건에 휘둘리는 호들갑
권영상
유난히 호들갑을 떠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산이 있어 가끔 오른다. 어느 때부터다. 양손에 스틱을 잡고 오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 며칠 뒤부터다. 그런 사람들이 이번엔 부쩍 눈에 띄었다. 나트막한 동네 산이라 양손 스틱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마치 고산 등정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텔레비전에 모 의사가 나와 그런 말을 했다는 거다. 무릎관절을 보호하려면 등산을 할 때 양손에 스틱을 이용해야 한다고.
그렇게 한 때 양손 스틱을 쓰며 동네산을 오르내리던 사람들도 요새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호들갑은 스틱만이 아니다. 하수오가 방송되면서 전국의 산야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수오만인가. 무슨 약초가 어디에 좋다 하면 그 순간 우리나라 국토는 정말 고달프다.
요즘 가장 호들갑을 떠는 이슈 중에 성폭력과 학교 폭력, 그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칠곡 계모 사건이 있다. 성폭력 사건은 연일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 판을 달군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부끄러운 정도로 성폭력과 성희롱 사건은 지치지 않고 나라를 휘몰아친다. 마치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성폭행범이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남자로서 밤길을 다니기가 오히려 두렵다. 호젓한 길에서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여성을 만나면 그 여성이 무서울 정도다. 뉴스 판에 성폭력 기사를 올리면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이 개입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학교 폭력 또한 만만치 않다.
학교가 마치 폭력집단이거나 폭력을 양산하는 곳인 양 호들갑을 떤다. 실제 폭행으로 말미암아 살인사건이 일어난 무서운 사례도 있다. 조직폭력배를 능가하는 폭력 사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과다한 호들갑으로 학교가 설자리마저 잃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학교에 자녀를 보내 폭력에 시달리게 하느니 일찌감치 외국 유학을 보내자는 풍조도 지나친 호들갑이 부추겨낸 숨길 수 없는 결과다.
학교 친구에게 맞았다거나 교실에서 왕따를 당했다거나 교사에게 맞았다면 이건 너무너무 짭짤한 뉴스거리가 된다. 언론은 이런 뉴스를 다룰 때면 꼭 온 국민이 공분하도록 뉴스 테크닉을 조작한다.
개똥녀가 그런 경우다. 전 국민이 일시에 그녀를 향해 공분한다.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완전히 추방시켜야 속이 풀릴 정도로 심리가 극악해진다. 칠곡의 계모 사건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내린 징역 10년에 성이 차지 않는다.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국민적으로 공분한다. 칠곡 계모의 행위도 무섭지만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는 무분별한 공분도 무섭다. 그녀를 향해 돌멩이를 던져 그녀가 피투성이로 목숨을 잃는 걸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들의 집단 폭력 심리가 실은 더 두렵다.
그 심리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실체는 무엇일까.
자신도 칠곡의 계모와 같은 자녀 폭행의 공범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아닐까.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아동학대 6796건의 가해자 가운데 76.2퍼센트가 친부모라고 한다. 그들 중에는 거의 매일 자녀를 폭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심한 경우 칠곡의 계모보다 더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걸 보면 우리의 이 호들갑이 자신을 향한 복수극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자녀가 왕따 당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면서 어른들은 서슴지 않고 개똥녀를 만들어 왕따시키고, 칠곡 계모를 향해 날 선 돌멩이를 던져댄다. 전철 바닥에서 술에 취한 채 소변을 보는 이가 몹쓸 사람인 게 아니라 그를 향해 복수를 하듯 증오의 화살을 집단적으로 쏘아대는 우리가 더 무섭고 두렵다.
무슨 약초가 어디에 좋다 해도 이제는 좀 신중해졌으면 좋겠다. 어느 곳의 보리밭 풍경이 아름답다는 소식을 들으면 전 국민이 달려가 짓밟고 돌아오는 그런 호들갑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세상일에 휘둘리지 않고, 고요히 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칠곡 계모 사건이 끝나면 언론은 국민의 멱살을 쥐고 흔들 그럴 듯한 사건을 또 발굴해 낸다. 우리는 그 일에 또 끄달려 다니며 까닭없이 흥분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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