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권영상
겨울이 지루해질 때면 봄을 기다리지요. 예나 지금이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펑펑 눈이 내려주길 바라던 것도 불과 두어 달 전입니다. 그런데 폭설을 겪으면서 추위에 시달리자, 그게 몇 달이나 됐다고 또 봄이 오길 기다립니다. 이런 되풀이를 벌써 몇 십 년이나 하고 있으니 사람 마음이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겨울은 유달리 길었습니다. 대장 내시경 검사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2,3년에 한 번씩 위와 대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는 말에 자진해서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위와 대장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검사상의 후유증으로 겨울 내내 복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느라 겨울이 여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받은 기기의 자극 때문이지 별 이상은 없다는 말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기는 지난번에도 똑 같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복통은 여전하니 제 발로 걸어 들어가 검사를 한 게 후회스럽기만 했습니다. 오늘은 염증 여부를 가리겠다며 혈액검사를 하래서 그걸 했습니다. 한 시간 뒤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복통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심은 되었습니다.
나는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성으로 갔습니다. 차를 몰고 가려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살아있는게 고마웠습니다. 조금 몸이 불편하긴 해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내 몸이 고마웠고, 아직은 적막한 산과 들판이어도 그걸 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조금 열어둔 창틈에서 ‘피이피이피’ 듣는 바람소리도 고마웠습니다. 이 길을 한 달에 서너 번씩 다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입니다. 잃어버린 눈을 되찾은 것 같고, 잃어버린 귀며, 잃어버린 오감을 되찾은 것 같이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살아있다는 감회를 오늘 느꼈습니다.
한 시간 만에 안성 집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2월초에 한번 다녀간 뒤 한 달 만입니다. 그간 비워둔 집의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바깥 공기가 차기는 해도 갇혀있는 방안의 공기보다는 낫습니다. 조리대 수도꼭지를 틀어보았습니다. 다행히 얼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물도 틀어보고, 집바깥에 싸매어둔 수도도 풀어서 꼭지를 틀어봤습니다. 모두다 겨울을 잘 견뎠습니다. 촤아아, 하고 막혔던 기도가 열리듯 찬 물을 쏟아냅니다. 마치 오랜 겨울잠을 깨워내는 것 같았습니다. 물소리에 움츠렸던 내 몸도 덩달아 꿈틀, 합니다. 물은 역시 힘의 동력입니다.
괭이를 꺼내들고 마늘과 시금치를 심어놓은 텃밭으로 갔습니다. 햇볕이 좋아 그런지 마늘밭에 마늘이 돋았습니다. 파란 마늘 촉이 보석 같이 반짝입니다. 적막한 땅이 보내는 서사극의 전주 같기도 하고, 봄이 보내는 우편물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게 너무 반가워 마늘밭에 덮어주었던 웃거름을 긁어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파란 마늘 이랑이 만들어집니다. 모두 열한 이랑입니다. 아직 이가 빠진 자리가 많지만 햇볕이 굵어지면 순을 못 낸 마늘들이 올라올 테지요.
가만히 보려니 아직 3월 중순입니다.
예전 고향의 마늘밭은 동녘 울담 너머에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암탉들은 병아리들을 데리고 쭈르르 마늘밭으로 나갑니다. 두 발로 꼼짝 않던 마늘밭을 헤치지요. 겨울 내내 안 쓰던 다리니까 파헤치는 힘이 얼마나 세겠나요. 닭들이 파헤치고 난 자리엔 파랗게 마늘 순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을씨년스런 계절에 만나게 되는 파란 마늘 순이란 너무도 경이롭습니다. 모진 추위와 눈더미 속에서도 생명을 잃지 않은 힘이란 놀랍습니다.
씨 뿌린 시금치도 성냥개비만큼씩 컸습니다. 그들 말고도 이쪽 빈 밭엔 황새냉이며 어린 개망초가 흙인 듯 아닌 듯 납작 엎드린 몸을 추슬러 올립니다. 밭둑 잔디 사이엔, 아, 놀랍기도 하지요. 토끼풀이 동글동글한 잎을 피우며 파랗게 돋아나 있습니다. 꽃다지며 꽃마리는 벌써 눈곱만한 꽃을 피워냈습니다. 남향을 한 벽 바로 앞에 텃밭이 있어 벽에서 반사한 것까지 두 배의 볕을 누립니다. 그러다 보니 봄도 다른 밭에 비하면 더 빠른 듯 합니다.
텃밭을 손질하고는 집 둘레 청소를 했습니다. 구멍 난 자리에 잔디도 잘라 입히고, 굴러다니는 마른 풀은 모아 밭에다 묻어주고, 오후 5시쯤에야 안성을 떠났습니다. 이미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습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량 대수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향해 달려오면서 아팠던 겨울 기억을 털어냈습니다. 촉이 파란 마늘이며, 시금치며, 황새냉이, 꽃마리며 꽃다지, 토끼풀이며 그런 끈질긴 생명들 덕분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그들이 이 세상의 맨 아래층을 껴안고 살아준 덕분에 추워도 춥지 않고 든든했던 거지요.
길게 느껴지던 겨울도 이제 다 갔습니다.
병석에 누워있는 분들에게도 이 봄볕이 그들을 훌훌 털고 일어서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을 드나들며 보았던 휠체어에 앉은 분이며, 머리를 온통 붕대로 감싸고 천천히 복도를 걷던 앳된 환자나, 수심 가득한 얼굴로 수납 번호 기다리던 이들 모두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암만 먹고사는 일이 힘들다 해도 병원보다야 몇 백 배 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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