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시험, 더 어려워졌나요?
권영상
중간고사 철이 돌아왔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처음 맞는 시험이다. 시험을 앞두면 엄마들이 더 긴장하는 것 같다. 며칠 전 학부모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학교 시험이 옛날 저희 때 보다 더 어려워졌나요?”
그렇게 묻고는 답답하신지 계속 말을 이었다. 저희가 중학교 다닐 때는 요즘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은 성적 받은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 어머니 목소리가 차츰 높아져 갔다. 그런데 늦도록 학원 다니는 아들 성적표를 받아보면 실망이 크다는 거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통화를 마쳤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옛날의 나만 해도, 아버지가 하시는 농사일 거들고, 소 먹이고, 시골 아이들이면 당연히 해야할 일 다 하며 학교에 다녔다. 더구나 누구 하나 ‘공부하라!’는 잔소리쯤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부모님의 뜻은 공부보다 나이를 먹여 농사일을 하게 하실 요량이었으니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실 리 없었다. 오히려 공부한답시고 늦은 밤까지 앉아 있으면 부모님은 전기료 나간다고 전등조차 일찍 끄게 하셨다. 그러고도 성적은 뒤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살던 그때와 환경이 너무 달라졌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아이들은 부랴부랴 학원으로 달려간다. 학원도 한두 ‘탕’이 아니다. 국영수과학 종합반에다 틈틈이 논술학원, 영어회화 학원을 전전한다. 학원 통학 시간이 아깝다며 개인과외를 받는 경우도 적잖다. 그렇게 학원공부에 시달려서는 밤 11시나 돼야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선 학교 과제며 학원 학습지를 푼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는 아이들은 학원 학습지를 학교로 가져와 정규 수업 시간에 몰래 푼다. 잠깐만 쉬어도 예전과 달리 ‘공부! 공부!’하는 부모님의 채근이 있다. 휴대폰 시대라 짬짬이 휴대폰으로 원격 관리까지 당한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은 과거 부모 세대보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바친다. 그런데도 성적표를 받아보면 부모님들은 오히려 당황한다. 과거 자신들의 성적보다 더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요즘 시험 문제가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는가?’라는 의문을 가져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학교 시험을 경험했고, 또 요즘의 시험을 출제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어려워진 건 아니다. 쉽기로 말한다면 지금 시험이 과거보다 훨씬 쉽다. 과거는 오답을 유도하는 문제도 많았고, 정답선택도 까다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학습목표에 원만히 도달했는가를 측정하기 때문에 가급적 정답을 선명하게 출제하는 경향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바친 그 많은 공부 시간과 경제적 비용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암만 생각해도 시간만 소비하고, 돈만 허비한, 어른 욕심에 아이들만 골병드는 잔치가 아니었나 한다. 그나마 일부 좋아진 성적이 있다면 그건 달달달 왼, 흉물스런 죽은 공부의 결과물이 아닐까.
3년 전이다. 우리 반에 영국 태생인 중국계 마이클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결석을 했다. 다음날 결석 이유를 묻는 내게 그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못 왔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어이없어 하는 내게 마이클이 정색을 하며 “선생님, 동생들을 돌보는 과업은 학교 공부 못지않게 소중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온 지 2년밖에 안 된 마이클은 학원 하나 다니지 않는 우리 반의 우수학생이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그 때 나는 마이클에게서 처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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