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인생
권영상
여름방학이 끝나면 아이들 키가 한 뼘씩 큰다. 방학 한 달을 쉬는 동안 어깨가 벌어지고, 가슴이 넓어진다. 몸만 크는 게 아니라 생각도 깊어진다.
엊그제 우리 반 32명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러 남산엘 갔다.
중학교 1학년인데도 아이들 뒷모습이 의젓하고 든든해 보인다. 나이로 치면 열세 살 소년들이다. 그러나 열세 살은 덩치가 커도 속일 수 없이 열세 살인가 보다. 길옆 난간에 올라가 가랑이를 벌리고 쭈르르 미끄럼을 탄다. 아이스크림 장수를 보더니 그걸 사달라고 조른다. 미운 데가 없는 장난기 많은 나이이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내게 슬며시 다가온 녀석이 있었다. 진재다.
“선생님, 혹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볼살이 통통한 진재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불쑥 물었다.
“진재는 생각 좀 해 봤니?”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되물었다.
“인생이란 식탁 위에 오르는 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으음, 제가 생각하기엔 말입니다.”
진재의 눈빛이 빛났다.
“부끄러움을 사랑하는 일 같아요.”
놀랍게도 그랬다.
“그래? 그게 무슨 뜻이지?”
열세 살 진재가 정말 대견스러웠다.
“하루에 다섯 번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날 하루를 헛되이 살았다는 말 아시지요?”
그러며 씨익 웃었다.
진재는 요즘 인생에 관한 금언집을 주로 읽는다고 했다.
그 말에 불현 나의 소년 시절이 떠올랐다.
인생 공부에 관한 나의 첫 시작도 그랬다. 철학서적을 뒤지거나 도덕책 같은 러시아 소설을 읽으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주로 인생을 정의해 놓은 금언집에서 시작했다.
“인생은 불확실한 항해다. 셰익스피어.”
“인생은 한권의 책과 같다. 장 파울.”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 인생은 시간으로 되어 있으니까. 플랭클린.”
이런 식으로 인생을 외었다.
장 파울이 누군지, 플랭클린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열세 살의 나이는 인생을 배우는 초보자다. 초보자는 서툰 편린 같은 명언들을 사모한다. 그러면서 인생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부터 인생을 생각했지?”
진재에게 물었다.
진재는 한참 숙고하더니, 일주일쯤 되었다고 했다.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그의 진지한 ‘인생’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근데 말이에요, 선생님.”
진재가 다시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촌 누나한테 ‘인생이란 부끄러움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했더니 글쎄 절 보고 노땅이라지 뭐예요.”
‘노땅’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애늙은이’라 했다.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웃었다. 진재도 웃었다. 남산의 깊어가는 숲도 따라 웃었다.
열세 살 진재에게 인생을 생각할 가을이 온 게 틀림없다.
권영상 수필집 <뒤에 서는 기쁨> 중에서
Naver, '네이버 캐스트'에 수록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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