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년의 잔인한 여름’ 감상기

권영상 2012. 8. 31. 08:58

 

‘2012년의 잔인한 여름’ 감상기

권영상

 

 

 

8월 30일.

이제 하루가 지나면 ‘2012년의 잔인했던 여름’도 다 간다.

지난 여름은 여느 해와 달리 3종 무기로 무장하여 링 위에 올라왔다. 권투의 3종 펀치가 스트레이트 펀치, 어퍼컷, 잽이라면 이번 여름의 펀치는 폭염과 폭우와 폭풍이었다.

 

여름은 링 위에 올라서자마자 우리들의 턱밑에 잽싸게 폭염을 날렸다. 그의 펀치는 강했다. 우리가 여태 겪어보지 못한 섭씨 35,6도의 펀치였다. 그의 주먹은 연일 전국을 강타했다. 일회성 주먹이 아니라 내리 17일간 연속적으로 휘둘러댔다. 낮 동안만이 아니다. 라운드마다 1분간씩 쉬어야 하는 휴식시간도 없이 연타를 날렸다. 미친 열대야의 주먹은 헉헉대는 대지와 인간의 땀을 쥐어짰다.

 

“70평생을 살아봤지만 이런 경기는 처음 관전합니다.”

여름을 관전하던 제주의 한 관전자는 방송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경악했다.

폭염은 해마다 남모르게 기록을 경신해왔다는 뜻이다. 지난 70년 이래 여름은 끝없이 기록 경신을 위해 분투했다. 인간이 문명! 문명!을 연호하며 그 문명에 몰입하는 동안 문명이 배출해낸 co2 덕분에 폭염은 오만해졌다.

 

나는 폭염을 더욱 잘 관전하기 위해 주로 등산을 했고, 주로 통풍이 없는 내 작은 방에서 글을 썼고, 주말농장에 나가 고추를 따고, 토마토를 키우고, 뽑아도 뽑아도 살아나는 풀과 싸움을 했다. 그때마다 폭염은 바람과 격리된 내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달려들었다.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간간히 일어나 웃옷을 활활 흔들거나 바짓가랭이를 흔들어 폭염을 쫓아보는 일이 전부였다.

 

그때 내게 소원이 있었다.

‘이제 그만 비라도 한 방울 내려 주소서.’

내가 그것을 기원하고 있을 때 하늘은 그것을 어찌 알고 비를 보내셨다. 비도 비도 아주 무서운, 공포 영화에서나 볼만한 그런 비를 주셨다. 여름은 숨겨온 비수처럼 폭우로 우리의 전신을 강타했다. 역시 여름은 강자였다. 그는 날로 진화하는 맹수와 같았다. 그에게서 신사다운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는 폭염으로 지쳐 쓰러진 자들에게 물을 퍼부었다. 자비의 제스처가 아니다.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워 맹렬한 카운트 펀치를 날리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는 야성적이며 또한 승부사의 기질이 있었다. 그러기에 그에겐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링 위에 다운된 자에게 야비하게 주먹을 날리는 그를 보며 우리는 전율했다. 그 모습은 마치 두려움에 떨며 k1을 관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달아날 틈도 없는 높은 휀스, 그 안에 가두어놓고 글로브도 안 낀 맨주먹으로 얼굴을 난타하는 그 잔인함.

 

 

그는 시간당 50밀리, 하루 300밀리 또는 그 이상의 강한 우량으로 우리를 괴롭혔다. 그 펀치에 동네 방죽이 힘없이 무너졌고, 산사태가 지붕을 덮쳤고, 멀쩡한 길이 끊겼다. 그 바람에 이 경기에 아무 관심도 없는 앰한 목숨을 우리는 잃고 말았다. 폭우에 시달릴 때마다 우리는 지구의 이변을 내심 의심하고 있다. 지구가 두려운 음모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 무렵 비를 달라 했던 나의 소원이 바뀌었다.

‘제발 이 비를 그치게 해 주소서.’

비를 달라 한지 열흘쯤 지나 나는 기어이 그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이 폭우에 지쳐있었다.

폭우는 나의 기도처럼 정말 가버렸다.

 

이제 우리는 생업의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아, 지독한 세기의 강자! 여름은 드디어 갔도다, 하며 열호했다. 12라운드도 다 끝나가는 8월 28일이었으니까. 아무리 강한 위력의 여름이어도 세월 앞에서는 맥없이 쓰러지리라는 명언을 나는 믿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봄이 없어지고,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이 줄어든다는 것. 남극에 있어야할 빙하가 사라지고,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사라진다는 것. 대구의 사과밭이 없어지고 철원에 사과밭이 새로이 생긴다는 것. 무엇보다 남태평양의 섬들이 천천히 물속으로 잠긴다는 것. 영국과 유럽 인근의 영토와 일본의 영토가 일부 해수면 아래로 사라진다는 것. 앞으로 500년 뒤 지구의 온도가 100도에 가까워진다는 것.

있던 것이 없어진다는 것. 분명 우리가 써왔던 역사서는 이제 다 불태워버려야 한다.

 

 

폭우가 가자, 미친 폭주족처럼 이번엔 볼라벤이 찾아왔다.

“내일은 태풍 볼라벤으로 인하여 휴교합니다.”

수업을 하고 있을 때 교실 스피커가 그렇게 빅뉴스를 전했다.

교실은 일시에 환호했다.

여름 관전은 이렇게 열광적이었다. 지쳐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파이팅을 연호했다.

초속 50미터의 볼라벤. 그의 주먹은 견고한 철탑도 한방에 쓰러뜨린다 했다. 그 말에 힘없는 우리들은 금방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아니 이 여름을 관전하는 모든 관객들이 다 두려움에 떨었다. 볼라벤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특별재난 방송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 폭풍의 게임을 잘 관전하기 위해 늦은 밤 베란다 유리창문에 강한 접착 테이프를 엑스자로 붙였다. 볼라벤의 주먹에 유리 창문이 박살날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테이프를 붙인 창문을 볼라벤이 치명적으로 부셔버렸을 때 더욱 열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8월 28일 오후 3시, 서울로 상륙한다는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불만에 가득찬 사내처럼 나무 몇 그루와 기왓장 몇 개와 일없는 집의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싱겁게 가버렸다. 서울이 그랬다는 말이다. 남쪽은 사정이 달랐다. 사과밭의 잘 큰 사과를 털고, 비닐하우스 지붕을 벗겨내어 그 속에 든 참외며 상추며 토마토를 린치했고, 포구에서 불안하게 가슴 졸이던 어선을 파괴했다. 역시 볼라벤이라고 잔혹한 폭우와 폭염과 다를 바 없었다. 같은 혈통임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그는 떠났다. 

 

여름은 폭염과 폭우와 폭풍의 기록 경신을 위해 해마다 기염을 토한다.

노동력을 쥐어짜 무역흑자에 도전하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쾌락하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숨막히게 도전하는 뭇 인간들처럼.

2012년의 여름 게임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 여름은 가지만 그는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난해한 질문을 던져 놓았다. 이제 우리가 그 질문에 답해야할 차례다.

아듀, 2012년의 위대한 여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