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은
권영상
이 이야기는 과거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다. 먼먼 선대 어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분명 근래의 이야기이면서 지금의 문명과는 너무도 떨어진 이야기다. 어찌 보면 아무 가치도 없는 낡고 빛바랜 이야기다. 그러나 누군가 문자로 남겨둘 책무가 있다.
그곳은 대관령을 늘 올려다보고 사는 마을이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물을 입안 가득 물고 고갤 치켜들어 우우우 하여 뱉을 때, 우리들 눈앞에 어김없이 다가와 서는 것이 있었다. 대관령이다. 대관령은 11월부터 희고 시린 눈을 3월이 끝날 때까지 제 머리에 얹고 사는 준엄한 백두대간의 한 고개다. 그 고개를 쳐다보고 사는 마을 중에 강릉시 초당동이 있다.
집이 100여호. 집들에 비해 갈아먹고 살 땅은 부족했다. 땅만이 아니다. 그 백여 호의 방구들을 덥혀줄 땔감 또한 부족했다. 그래서 겨울이면 이불을 덮고, 그 위에 또 이불을 덮고, 또 이불을 덮고 잤다. 오줌을 누러 뒷간에 나가는 게 너무도 추워 밤이면 요강을 방안에 들여놓고 살았다. 한밤중 누군가 또로로로, 요강에 오줌을 누면 그 오줌소리는 우리들의 긴 겨울잠을 깨웠다. 오줌소리와 함께 짧게 스쳐가는 지린내. 겨울밤은 그렇게 늘 추웠다. 자고 일어나면 옹크리고 잔 다리를 삐그덕거리며 펴야할 만큼 겨울밤은 모질게 시렸다.
가족을 애끼시는 아버지가 그걸 모르실 리 없었다.
젊은 아버지는 추수를 마치면 백부님, 그러니까 아버지의 손위 형님과 대관령을 올라가신다. 버스로 가면 시간 반, 걸어가면 5시간 거리. 대관령 너머엔 나무가 많다. 눈 내리기 전에 땔감을 하실 요량으로 아버지는 해마다 대관령 너머 싸리나무 많은 싸리재로 가셨다.
새벽밥을 자시고, 보자기에 잘 벼린 낫 한 자루를 숨겨넣고 우선 읍내로 가신다. 거기서 횡계 가는 첫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싸리재로 숨어드신다. 혼자가 아니고 형님과 두 분이. 호랑이 드문드문 나온다는 적막한 산중에서 우차로 두 차분의 땔나무를 하루 진종일 하신다. 아버지가 나중 실어오시는 나무를 보면 주로 생솔가지, 싸리나무, 박달나무 등속이다. 그 나무들을 숲속에 쟁여놓으시고 그 길로 돌아오신다.
그날로부터 아버지는 우차를 손 보신다. 땔나무를 실어올 유일한 수단이 우차였으니까. 고무가 닳은 우차바퀴를 간다든가, 구멍이 헐거워져 덜걱거리는 가름대에 쐐기를 박으신다. 그뿐인가. 콩여물을 먹여 힘을 돋우는 외양간 암소의 신을 삼으신다.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우차를 끌고 걸어오르내리려면 소도 발이 아프다. 발이 아프면 소가 걸을 수도 없고 자칫하면 땔나무마저 잃을 수도 있다. 그걸 피하기 위해 아버지는 짚 모숨에 망가진 그물을 섞어 질기고 푹신한 쇠신을 여러 컬레 삼으신다.
그 일이 끝나면 하루에도 몇 번 대관령을 치어다 보신다. 도무지 눈이 내릴 것 같지 않은 날을 고른다. 드디어 날이 잡히면 새벽 어둠을 밟아 추운 길을 떠날 요량을 하신다. 그날 어머니는 잠 한 숨 못 주무신다.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열고 바깥 하늘을 내다보신다. 마당귀 오동나무 우듬지 너머 그 하늘에 삼태가 있다. 삼태성.
“아직 한숨 더 주무셔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삼태를 보시며 아버지의 잠을 걱정하셨다. 그러면서 아버지 아침진지 만들어드릴 시간을 재셨다. 삼태,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는 오리온좌를 삼태라 부르셨다. 삼태가 큰곰자리 근처에 있는 세쌍 별이라 하지만 우리 어머니의 삼태는 앞마당 위를 지나는, 큰곰자리에 비하면 남쪽에 있는 오리온좌다. 시계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삼태를 보시고는 미역국에 찰밥을 차려내셨다. 그런 기척을 아시고 사랑방에서 주무시는 아버지는 일어나 간략히 세수를 하신다. 그러시고는 어머니 차리신 진지를 꾹꾹 자시고 암소에 우차를 메워 깜깜한 밤길을 나서신다.
모르기는 해도 그때가 새벽 4시.
아버지는 그때부터 젊은 암소와 함께 하루를 사신다. 암소가 끄는 우차와 함께 걸어 해발 832미터의 대관령을 넘어야 한다. 무려 5시간을. 아버지 떠나시는 걸 보면 나는 추운 이불 속에 든다. 그러나 아버지 그 험하고 추운 길로 보내고 어찌 이불 속에 들 수 있느냐며 어머니는 등잔불을 돋우어 책을 읽으셨다. 그러며 그 길고 긴 책 속의 길을 가시다가 책을 놓고 우리들의 아침을 다시 지으셨다.
아버지는 대관령을 넘어 가셔서 무얼 하실까. 그 무렵 열 살 밖에 안 된 나는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에 생각하면 미리 해서 쟁여놓은 나무들을 우차에 싣고, 그리고 추운 밤 8시가 될 때를 기다리셨을 거다. 그때도 지금처럼 몰래 산에서 나무를 하는 일은 위법이었다. 이런 위법을 아셨기에 아버지는 밤 8시를 기다리시는 거다. 왜냐하면 강릉 시내로 들어오는 외따른 길목에 파출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법자들을 잡는 이름하며 공제파출소. 거기엔 농투성이 농부들이 두려워하는 순경이 있었다. 그이들이 파출소 일을 다 보고 문을 닫는 시각. 그때가 밤 12시, 자정이었다. 이 파출소 앞을 무사히 통과하시려면 적어도 자정을 넘겨야 한다. 그때를 맞추기 위해서라면 밤 8시에 출발해야 한다.
겨울의 8시는 칠흙같이 어둡다.
드디어 아버지는 백부님과 함께 5시간의 대장정의 길을 떠난다. 혹여 불길한 일이 생길지 몰라 워낭까지 떼어낸 채로.
소 두 마리에 사람 둘, 우차 두 대. 어쩌면 그 여섯이 사람처럼 같이 숨을 쉬며 같이 무섭고 가파른 아흔아홉 구비를 내려와야 한다.
내가 언제 본 티베트 사람들의 ‘차마고도’가 어쩌면 우리 아버지의 ‘아흔아홉 구비의 우차길’을 닮았을지 모르겠다. 그때도 대관령을 넘나드는 버스나 트럭은 있었다. 그들은 포장되지 않은 눈과 얼음길에서 핸들을 놓쳐 툭 하면 가파른 계곡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래서 많은 이가 다치고 또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그 사실을 아시는 어머니는 뒤란 장독위에 맑은 물을 떠놓고, 빌고 또 비셨다. 밤이 이슥하도록 하늘을 지키고 있는 북두칠성님에게 비셨다. 그러다 지치면 방안에 들어오셔서 책을 읽으셨다. 주로 임진록이며 박부인전을. 그 책을 읽다가 또 마음이 불안하여 괴로우면 뒤란에 나가셔서 북두칠성님을 보셨다.
우리들은 또 무얼했나? 어린 우리들은 안마당 마당귀에 선 오동나무 아래에 나와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달달달 떨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윽고 저쪽 어둠 속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음성이 있다.
“이랴!”
그 소리는 처마에 켜놓은 우리 집 외등을 보신 아버지의 반가움의 인사다. ‘이랴!’라는 음성 속엔 ‘아버지가 다 왔다’는 뜻이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걸어온 아버지이시고,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 졸이며 기다려온 아버지이신가. 아버지는 적지에서 돌아오는 병사처럼 그렇게 무사히 귀환하셨다.
그때가 모르긴 해도 밤이 깊을 대로 깊은 새벽 1시쯤.
우리는 모두 우차길로 나가 아버지를 맞으시고, 마을 뒤에 계신 백부님을 보내신다. 아버지는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우차를 잘 몰아 정지밖 나뭇가리에 그 많은 나뭇짐을 차곡차곡 쌓으신다.
그때 나는 보았다.
우리들이 든 등불빛에 아버지의 등에서 무럭무럭 솟구치던 김을. 나는 지금도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그 추운 겨울밤인데도 아버지의 옷은 온통 뜨거운 땀 범벅이었다. 관에 붙잡히실지도 모를 두려움, 그리고 위태로운 대관령길, 그 먼길을 당일로 돌아오는 고됨, 잔인한 추위와 허기....
해마다 아버지가 해오신 그 땔나무로 겨울 삼동을 우리는 춥지 않게 났다.
“넉넉하게 불을 넣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힘들게 해오신 나무라 아궁이에 넣을 나무도 아끼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넉넉히 넣으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그 당시 땔나무는 쌀금만큼 귀했다.
그후, 나는 아버지가 우차를 몰고 걸어오르내리시던 대관령길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마치던 그해 2월, 눈 내리는 날을 골라 아무 장비도 없이 운동화 한 컬레로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 횡계에서 멈추었다. 너무도 추운 혹한이었다. 나는 밥 대신 언 눈을 삼키며 걷고 또 걸어 어느 여관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그 이튿날에 깨어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 여기 내가 있다.
이 이야기는 무려 4,50년 전의 간난했던 한 마을의, 한 농가의 비화다. 4,50년, 어찌보면 그리 멀지 않은 지난 세월이고 또 어찌 보면 머나먼 시간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수레바퀴는 너무도 빨리 굴러서 여기까지 왔다.
대체 이 이야기가 누구에게 도움이 될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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