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8. 만파식적
섬이 온다
“섬이 온다! 섬이 온다!”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소리쳤다.
먼 바다에서 거북머리를 한 섬이 뭍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놀라 강아지들이 뭘뭘뭘 쫓아 나왔다.
마을 솟대 위에 앉았던 오리들이 왝왝왝 날아왔다.
어른들이 워디! 워디! 하며 걸어 나왔다.
다들 바닷가에 서서 이 놀랍고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섬이 떠다니다니!”
사람들은 넋을 놓았다.
“섬이 감은사 쪽으로 가고 있다!”
흰 파도를 일으키며 섬은 마치 커다란 배처럼 그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소문은 발 달린 망아지처럼 마을 경계를 넘었다.
개울을 건넜다.
언덕을 넘었다.
그리고는 궁궐 담장을 넘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때가 신문왕 2년 서기 682년.
“섬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가고 있다는 데 대체 어쩐 일이오?”
왕이 일관에게 물었다.
일관이 점을 쳐보더니 말했다.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 장군께서 보배를 주시려나 봅니다. 받으러 나가소서!”
그 말에 왕은 자리에게 일어났다.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은 힘을 합쳐 삼국을 통일하고
통일 이후의 신라를 지키기 위해
한 분은 바다에, 또 한 분은 하늘에 계신다.
“나 곧 이견대로 가리라.”
낮에는 둘로 밤에는 하나로
왕은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감은사 가까운 이견대에 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북 모양의 섬이 와 있었다.
섬엔 대나무 두 그루가 또렷하게 보였다.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대나무이옵니다.”
며칠 전부터 섬을 쭈욱 지켜보던 마을 노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괴이한 일이로고.”
왕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이치를 왕에게 일러주려는 듯 하오니 섬에 들어가 보심이......”
왕은 노인의 말을 따라
가까운 신하 셋을 데리고 그 섬에 들어갔다.
대나무 앞에 이르자, 홀연 용이 나타나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시어!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볼면 나라의 근심이 사라질 것이옵니다.”
왕이 용에게 물었다.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가 되는 이 대나무의 이치가 무엇인고?”
용이 두 손을 부딪혀 보이며 대답했다.
“한 손으론 소리낼 수 없어도 두 손으론 그 어떤 소리도 만들어낼 수 있지요. 화합의 이치가 그것이지요.”
“두 손으로 만들어내는 화합이라?”
“화합이야말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보배중의 보배입니다.”
그러고는 홀연히 용이 사라졌다.
“아바마마!”
왕은 사라지는 용의 뒷모습에서 한 순간 아바마마 문무대왕을 느꼈다.
그것은 생전의 아바마마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다.
“대왕, 꼭 그리 하시오.”
아바마마의 외삼촌이신 김유신 장군의 음성이 공중에서 들렸다.
만파식적을 불다
“적선이 몰려온다!”
망루에 올라 바다를 지키던 병사가 소리쳤다.
돛을 올린 일본 배가 신라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적과 싸우기 위해 다들 창과 활을 찾아들고
바닷가 요새로 달려갔을 테지만
이제 그런 걱정이 필요 없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왕은 악공에게 고이 모셔둔 만파식적을 꺼내게 했다.
그리고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의 신라를 굳건히 지키려는 마음을 담아
성심껏 불게 하였다.
“뿌우우우뿌우우우”
만파식적의 신령한 소리는 궁궐의 담장을 넘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개울을 건너고 언덕을 넘어
적선이 오고 있는 먼 바다를 향해 은은히 날아갔다.
노를 저으며 까맣게 몰려오는 적선에 신령한 소리가 가 닿을 즈음이다.
“저들이 도망쳐 달아난다!”
망루에서 지켜보던 병사의 외침이 날아왔다.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
잠시 후, 적선으로 가득하던 바다는 비 끝의 하늘처럼 말끔해졌다!
“이게 모두 신령한 만파식적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승전보를 듣자, 왕이 말했다.
이제 신라는 두려울 것이 없어졌다.
돌림병이 오면 왕이,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의 깊은 마음을 담아
만파식적을 불게 하였다.
그러면 돌림병이 사라졌다.
가뭄이 심할 때에 불면 하늘은 단비를 내려주셨고
홍수가 날 때에 불면 하늘은 무지개를 띄워 올려 주셨다.
이제 백성들은 둘로 나뉘어 다투지 않았고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왕을 따랐다.
잃어버린 만파식적을 찾다
“만파식적을 잃어버렸나이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린 악공이 고하였다.
신문왕이 가고, 신문왕의 아들 6살 효소왕이 즉위한 693년의 일이다.
아버지 신문왕은 어린 왕을 염려하여
만파식적의 신령한 ‘소리’를 만들어 넘겨주었다.
근데 그걸 잃어버리다니!
“다시 한 번 잘 찾아보시오.”
어린 왕이 명하였다.
만파식적을 잃어버린 그 사이, 멸망한 고구려 땅에
말갈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와 신라의 변방을 어지럽혔다.
“국선이신 부례 화랑께서 그들을 쫓아내주세요.”
왕은 부례 화랑을 장수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만파식적이 없는
신라군은 번번이 싸움에 패하였고, 말갈은 장수 부례 화랑을 납치해 갔다.
그 무렵 악공은 허물어진 창고의 흙더미에서
만파식적을 찾아냈다.
“어서 불어 보시오!”
왕의 명을 받은 관리가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의 마음을 담아
고요히 만파식적을 불었다.
날뛰던 말갈사람들이 거짓말처럼 변방을 떠나 멀리 연기처럼 흩어졌고
잡혀갔던 부례 화랑이 돌아왔다.
왕은 만파식적의 신령한 힘에 너무 기뻤다.
“이 피리의 이름을 만만파파식적이라 부르게 하시오.”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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