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그분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

권영상 2021. 12. 15. 16:58

 

그분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

권영상

 

 

바깥일을 보고 돌아온 아내가 가방에서 신년 달력을 꺼낸다.

어느 사이 성탄절이 가까운 연말이다.

이 즈음이면 고향의 시골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시는 그분이 생각난다.

올해엔 그분에게 내 손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드리고 싶어 책상 앞에 앉아 서툰 붓을 잡는다. 우리나라 겨울 꽃 동백을 그려본다. 눈만 높았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빠끔히 내 방을 들여다보던 아내가 ‘그림 뭐 잘 그리네.’ 하며 싱긋이 웃는다.

 

 

초등학생 그림 같은 이런 카드를 받으면 받는 분이 좋아하실까.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휴대폰이 나오기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은 꼭 손으로 그려 보냈다. 아마추어 그림이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멋몰랐으니 오히려 즐거웠다.

나는 다시 팔레트의 물감을 찍는다.

20대 중반 나는 고향의 시골 교회를 다녔다. 신앙심도 신앙심이지만 정신적으로 좀 의지할 데가 간절했다. 그러던 어느 성탄절이 다가오는 겨울이었다, 뜻밖에도 그 교회 성가대원의 한 귀퉁이에 내가 끼어들게 되었다. 그건 순전히 그분 때문이었다. 그분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흔들리는 나를 이를테면 그렇게 품어주신 거다.

 

 

슬며시 교회에 왔다가 슬며시 나가는 나를 어느 날인가 그분이 조용히 불렀다. 성가대에 합류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부끄러웠지만 나는 그 고마운 제의를 놓치기 싫었다. 아무리 조그만 시골 교회라 해도, 또 성탄절 그쯤에나 운영되는 소박한 성가대라 해도 성가대는 역시 선택받은 직분이라 생각했다. 신앙심도 그렇고 교회 활동 역시 보잘 것 없는 내게 그분은 선물 같은 기회를 주셨다.

그때의 성가대는 성탄의 밤 새벽, 마을 집들을 한 집 한 집 찾아가 성탄 노래를 불렀고 새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몇 차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12월 25일, 시계가 새벽 2시를 알리는 그 순간부터 성가대 활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 시골은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았다. 교회에 나가든 안 나가든 성가대가 찾아와 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면 기꺼이 축하 선물을 준비했다가 내어주었다. 그건 스님이 찾아와 축원을 올리고 탁발을 청하면 기꺼이 시주를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춥고 고요한 밤, 우리는 농가의 마당으로 가만가만 발소리를 내어 들어가 성스러운 그날 밤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캄캄한 세상은 잠결에서 고요히 눈을 떴고, 닭장의 닭들이 붉은 볏을 흔들며 고개를 들었고, 별들은 더욱 반짝이며 초롱거렸다. 마침내 우리의 성탄노래가 절정에 이를 때면 한 순간 우주가 고요히 깨어나는 걸 느끼곤 했다.

그 밤은 너무도 성스러운 밤이어서 성가를 마칠 즈음이면 온몸에 깊은 감동의 전율이 돌고는 했다. 수십 호의 집을 찾아 수십 차례의 성탄가를 부르지만 부를 때마다 찾아오는 느낌은 마치 시간이 자정에서 새벽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것처럼 감동도 다르게 전해져왔다.

 

 

나는 두 해 동안 고향 시골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다.

그리고 직장을 얻어 고향을 떠났다. 그때 떠나가는 내게 그분은 윗분에게 받았다는 영문 미니 양피 성경을 작별 선물로 주셨다.

“길을 잃지 마세요.”

그랬지만 그 후, 나는 고향 교회도, 세상의 교회도 모두 잊고 살며 그만 여기까지 왔다.

그분에게 그 동안 교회를 찾지 못한 마음을 이 카드에 적어 찾아뵙는 일을 대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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