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김장하는 날

권영상 2021. 12. 6. 12:43

 

김장하는 날

권영상

 

 

토요일 오전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가 없다.

-언니 집에 김장 도와주러 가요.

식탁 위에 아내의 메모가 있다.

처형님 댁은 집에서 멀지 않다. 길 건너면 5분 거리다.

며느리들이 특별히 나를 위해 좋은 수육을 만든다고, 점심 먹으러 꼭 오라는 말도 며칠 전에 들었다. 김장하는 일에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하면서도 애들처럼 끼어들고 싶다.

 

 

지난해에도 김장하는 날, 점심 먹으러 갔었다. 처형님의 두 아들 내외가 왔었고, 코로나 문제도 있었지만 처형님 친구 두 분도 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 김장이라는 것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었고 함께 일했다. 한분은 그리 멀지 않은 과천에 사시고, 또 한 분은 처형님이 다니시는 직장 동료인데 목동에 사신다고 했다.

김장이 끝날 무렵 우리는 친해져서 커다란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먹었다. 고추와 굴과 젓갈 향이 어우러진 김장 김치와 잘 익은 수육과 맛있게 지어진 밥.

 

 

처형님 댁이라고 뭐 특별히 김장을 많이 하시는 것도 아니다.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김장이지만 김장이라는 이름의 멍석을 깔아놓고, 처형님은 두 아들 내외를 부르고, 우리를 부르고, 또 친구들을 불러 함께 밥 먹기를 좋아하신다.

우리는, 친구 분들의 입담에 맞추어 아유! 저런! 어쩌지! 그러다가 또 그럼 그렇지! 라거나 아무렴! 물론이죠! 그런 추임새를 넣어가며 재미나게 일도 하고 점심도 마쳤었다.

“불러주셔서 즐겁게 밥 먹고 갑니다.”

그분은 형제지간이라도 요새 이렇게 모여 함께 밥 먹고 이러는 집 없다고 했다. 밥 한 끼 먹는 사이에 며느님들과 정 들었다며 한 번씩 껴안고 그러고서야 헤어졌다.

 

 

그분들이 가실 때 우리도 며느리들과 작별하고 떠나왔다.

넓은 이 도시에 살면서 다행히도 종종 처형님 댁을 찾아가 식사를 함께 한다. 아들이 군에 간다고 환송 겸 모여 밥 먹고, 휴가 왔다고, 직장에서 승진했다고, 며느리 생일이라고, 복직했다고, 손자가 시험을 잘 쳤다고, 명절이라고, 모이는 이름을 붙여 밥을 먹는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애가 방학을 마치고 즈네 학교를 찾아 출국할 때면 꼭 밥 한 끼 먹여 보낸다. 그건 사실 옛날 고향 풍습이다. 이웃 중에 누가 군에 간다면 집집마다 그를 불러 한 끼씩 밥을 먹여 보냈다. 가서 탈 없이 힘든 일 잘 넘기라며.

처형님이나 동서는 그 풍습을 내심 사랑하는 듯했다.

 

 

부를 때마다 찾아가면 처형님 내외분이야 형제지간이니까 그렇지만 처형님 아들 내외인 조카와 조카며느리들도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감정으로 우리를 반긴다.

그러는 우리 사이엔 어김없이 밥이 있다.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같은 음식을 앞에 놓고 같이 먹는 밥. 특별한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함께 먹는 밥에서 깊은 정이 든다.

 

 

오후 1시가 지날 때쯤 아내의 오라는 전화를 받고 처형님댁에 갔다.

우리는 예의 그 커다란 밥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배추 향이 나는 김장 김치를 놓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둘러앉아 이런저런 정담 끝에 일어섰다.

배웅을 하러 한길까지 나온 큰조카가 크리스마스에 또 모여 식사해요, 한다. 이 모든 모임의 식사와 요리는 큰조카 손에서 나온다. 설거지는 튼튼한 둘째 조카 몫이다. 동서가 시기하지 않는다면 다음엔 내가 설거지를 맡아볼까 한다.

 

<교차로신문> 2021년 12월 16일자